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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지난 여행기 - 2003필리핀출장4

by 장돌뱅이. 2017. 9. 8.

6. 세부 CEBU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 세부행 비행기를 탔다. 필리핀 인 S와 동행이었다.
그와 함께 세부에 있는 그의 에이젼트와 미팅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부엔 나의 절친한 후배가 한명 살고 있다. 
십년 간 잘 다니던 우리나라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몇 년인가를 머물더니
느닷없이 필리핀으로 옮겨 마닐라를 거쳐 세부에 자리를 잡으면서 공부와 일을 하고 있는
다소 괴짜같은 인생을 사는 후배였다.
세부에서의 첫 비즈니스 회합에 더하여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세부는 오랜 전통을 가진 남부 필리핀의 항구 도시이다.
1521년 스페인 원정대의 마젤란이 도착했을 때 이미 “태국과 중국, 아라비아에서 온 많은 선박들이 있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지금도 세부는 필리핀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휴양지로서 세부를 이야기 할 때 그 세부는 항구 도시 세부가 아니라 세부에서 바다 너머로
가깝게 건너다 보이는 있는 막탄섬을 말한다.
막탄섬의 동쪽 해변을 따라선 샹그릴라를 비롯한 고급 리조트들이 줄지어 있다. 막탄섬에는
국제공항까지 있어 실질적인 세부의 관문이라고 할만하다.


*위 사진 : 막탄섬의 영웅 라푸라푸의 동상


막탄섬 북쪽 끝에는 해산물을 요리하는 식당 들이 몰려 있었다. 
마젤란의 침입을 물리치며 마젤란을 죽음으로 몰고간 막탄섬의 용맹스러운 추장 라푸라푸 LAPU-LAPU의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오전의 미팅을 끝내고 S와 그의 에이젼트, 그리고 미리 회의 장소 근처에까지 와서
나를 기다리던 후배까지 함께 그곳 식당으로 갔다.

여기서도 음식의 선택과 조리 방법의 선택은 S에게 일임하였다.
해산물을 고르던 S가 갑자기 물었다.
“마젤란을 라푸라푸가 죽였다면 라푸라푸는 누가 죽였겠는가?”
“......?”
후배와 나는 얼굴을 돌려 마주 보았다. 알 수가 없었다.
S가 답했다.
“요리사.”
“.....?”
그는 자신이 고른 생선의 이름 또한 라푸라푸 LAPU-LAPU 라고 설명해 주었다.
다소 썰렁한 넌센스 퀴즈이긴 했지만.




S와 점심식사를 마치는 것으로 이번 출장의 모든 일이 끝났다.

세부의 후배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차에 태우고 세부 시내를 가로 질러 북쪽에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C후배 세부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며 나에게 산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좀 내키지 않았다. 오후에 후배와 샹그릴라의 수영장이나 해변에 자리를 잡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이야기나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튿날 아침엔 일찍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느긋하게 쉬고 싶었다.
잠만 자고 나올 거라면 무엇 때문에 샹그릴라를 잡았겠는가. 세부에서 난데없는 산행이라니?
하지만 후배는 내가 무엇을 좋아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확신에 차 행동했다.
나의 짧은 세부 일정에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나 고민하다 선택한 곳이라며 사전에 준비가 있었음을 내비쳐
차마 샹그릴라로 차를 돌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차를 30분쯤 산허리를 오르더니 좌우로 시원스레 전망이 터진 능선길로 접어 들었다.
길은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이어지고 있었고 가끔씩 허름한 집들이 길옆으로 지나갔다.
이 산속에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것이고 어디쯤엔가 있다는 시장이 후배이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우리는 한 마을(?)에 도착했고 거기서 옥수수를 사먹었다.
얼기설기 나무로 엮어 지은 집은 작고 초라해 보였지만 사람들은 순박해 보였다.
카메라를에 호기심 어린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부끄러움에 기둥 뒤로 숨는 아이들도 그러해 보였다.
그것이 후배가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과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의 나의 계획과는 틀어졌지만, 그리고 계획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안내가 없었다면
세부를 여러 번 간다고 하여도 가볼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로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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