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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친구의 두 번째 생일

by 장돌뱅이. 2018. 3. 4.




2년 동안 꽤 자주 만나 오고 있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친구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겨우 친구의 몇 가지 취향과 관심사만을 짐작할 뿐이다.

이런 장난을 좋아할까 하고 준비해서 시도하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몸짓에 친구는 까르르 고개를 젖힌다.
동물이나 만화 캐릭터가 친구의 호기심을 끌지 않을까 그림책을 열어보이면
다른 책 속에 아주 작게 그려진 노란 반달을 용케도 찾아 손가락으로 짚는다.

실제의 달에도 큰 관심이 있는 친구는 베란다에서 오래도록 달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불을 반짝이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발견하는 날이면 빨리 다른 비행기를
오게 하라고 조르거나 답답한 듯 투정을 부릴 때도 있다.  
평지에서도 안아달라고 조르면서도 계단만큼은 혼자 올라가겠다고 끙끙거리기도 한다.
신기할 정도로 시큼한 귤을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부하기도
하고 실수로
입에 넣었다가도 곧바로 뱉어내기도 한다.

어떤 모임의 놀이시간에 원하는 (초)능력을 한가지씩 적어내라고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이라던가, 기타를 잘 치면 좋겠다던가 하는 것에서부터
돈을 잘 버는 초능력까지 다양한 희망을 말했다. 집 청소와 음식과 설겆이를 손가락 하나만 휙
움직이면
다 처리할 수 있는 소박한(?) 환상을 말하는 여성분들도 있었다.
나는 손자친구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을 갖고 싶다고 했다.
친구를 온전히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오래 그래야 할 것 같다.

반면에 친구는 자주 변하는 나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타이밍까지 완벽하다.
기었으면 좋겠다 할 때 기고 섰으면 좋겠다 할 때 서주었다.
걸었으면 할 때 걸은 뒤에는 아예 달려주기까지 했다.

요즈음 친구는 독특한 억양과 발음으로 나를 부른다.
"하부지, 하부지 하부지!"

내가 '할아버지'란 호칭보다 "하부지"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할 뿐이다.
나도 친구를 흉내내어 같은 억양으로 친구의 이름을 세 번씩 불러준다.
친구는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모두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걸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해준다.

친구가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지난 2년간 주변에 늘 베풀기만 해 온 친구이기에 축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나는 친구를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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