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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일본

나가사키에서 후쿠오카1

by 장돌뱅이. 2018. 5. 10.

이번 여행은 나가사키로 들어가서 후쿠오카를 통해 나왔다.
회사 재직시 업무 출장을 빼고 해외에 가면서 인아웃의 장소가 다른 것은 처음이다.
가고 올 때 각각 다른 항공사를 이용한 것도 처음이었다.
에어서울을 타고 가서 진에어를 타고 돌아왔다.
거기에 여행 시기 선택에 자유로운 백수가 되고 보니 비행 가격도
이제까지의 여행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착실했다.
우리에게 여행지로서 일본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대략 제주도 가는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나가사키 공항이었다.

나가사키.
먼저 원자폭탄이 떠오른다. 
여행 안내서는 나가사키의 짬뽕과 카스테라도 유명하다고 했다.
봄철이고 일본이니만큼 화사한 벚꽃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대충 그런 것들의 경험이 이번 나가사키 여행의 목적이자 내용이겠다.


공항에서 나가사키 시내까지는 공항버스를 탔다.
편도 900엔이지만 2장을 사면 1600엔이었다. 
이 두 장은 한 사람이 왕복으로 사용해도 되고 두 사람이 한번에 편도로 사용해도 된다.




숙소인 HOTEL NEW NAGASAKI에 짐을 맡기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우선 분메이도우(文明堂) 총본점으로 가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호텔 직원은 노면전차를 타고 오오하토(大波止)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분메이도우의 지점은 나가사키 도처에 있으나 총본점에서만 파는 특별 카스테라가 있다고 했다.
나가사키의 전차는 네 개 노선으로 이용구간에 상관없이 120엔 균일 요금이었다.
나가사키 시내 구경을 위한 여행자의 교통수단은 전차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분메이도우(文明堂) 총본점은 검은색의 
일본식 건물로 전차에서 내리자 바로 눈에 들어왔다.
1900년에 개업을 하여 지금은나가사키와 규슈를 넘어 전국적으로 100개가 넘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혹시나 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서울 강남에도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파는 곳이 있었다.
분메이도우의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녹차나 커피를 곁들여 달달한 카스테라를 먹으며 느긋하게 다음 일정을 잡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총본점은 테이블이 없이 판매만 하는 곳이었다.
할 수 없이 총본점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한정품 하나를 사서 들고 나와야 했다.




카스테라를 못 먹게 되었으니 대신에 메가네바시(眼鏡橋) 근처의 식당에서 다른 나가사키 음식을 먹기로 했다.
메가네바시는 글자 그대로 아치형 다리와 물에 비친 모습이 합쳐져 안경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던가.
니기와이바시(賑橋) 전차역에서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나가사키에서의 첫 식사는 만만치 않았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카스테라 대신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두 곳의 식당이 문을 닫았던 것이다.
긴자라시(ざらい 찹쌀가루로 만든 경단에 꿀을 부은 음식)나 오지야(おじや 찐 쌀에 
육수와 달걀을 가미하고 참깨와 파 등을 올린 음식) 중의 하나를 먹을 생각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식사는 뒤로 미루고 이리저리 발밤발밤하며 거리 구경, 사람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햇살이 좋았고 바람이 잔잔했다. 봄이 시작되면서 한국에선 매일 시달리던 황사와 미세먼지도 없었다.
투명한 공기에  숨쉬기가 편했다.


나가사키의 거리는 일본의 다른 도시가 그렇듯 아주 깨끗했다.

쓰레기나 담배 꽁초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담배 꽁초가 수북히 버려져 있는 서울 지하철 강남역 부근의 골목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간밤 술자리의 쓰레기가 함부로 널린 주말 아침 한강변의 풍경도 떠올랐다.
(그런 것들을 피해가며 달리기가 싫어서 올해부턴 아예 강변 조깅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갓길에 불법 주차된 차들도 전혀 없으니 도로가 여유롭고 한가해 보였다.
결코 넓은 도로가 아니고 전차까지 다니는 길임에도.

이렇게 절제된 질서 의식이 규제나 벌금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래 전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를 연구한 그의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에게는
사회적 의무를 충족하지 않았을 때 느끼는 수치심에 민감하다고 하였다.
그런 감각과 의식이 여전한 것일까? 모르겠다. 
다만 일본이 지닌 어떤 힘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것이 또 한 가지가 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친절이었다.
메가네바시에서 천천히 걸어 상가인 하마노마치 아케이드에 다다르니 배가 출출해 왔다. 
일단 손에 들고 다니던 카스테라로 간단 요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무슨 홍보 행사인지 피켓을 들고 있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서툰 일본어로 스타벅스가 근처에 있냐고 물었다.
한 학생이 손짓으로 설명을 해주는 데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자기가 직접 안내하겠다고 자청을 했다.
뜻밖에 서툴게나마 한국어를 하는 학생이었다. 방탄소년단의 팬으로 얼마 전 한국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학생은 쾌활하게 재잘대며 스타벅스 바로 앞까지 우리를 안내하고서야 돌아서 갔다.
그 학생의 친절은 앞으로도 몇 번 더 경험하게 될 '일본 친절'의 시작이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직원에게 빵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반입품은 안 된다고 했다.
먹기 힘든 나가사키 카스테라였다. 커피를 마시며 주변의 적당한 식당을 찾아 보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시안바시(思案橋) 전차역 가까이 있는 쓰루짱(ツル茶ん)이었다.
1925년에 창업된 곳으로
도루코라이스(トルコライス)로 유명하다고 했다.

도루코라이스는 돈까스, 스파게티, 버터 볶음밥을 3분의1씩 한 접시에 담아 나오는 단순 음식임에도
나가사키의 전통음식? 반열에 올라 있는 듯했다. 

카스테라와 도루코라이스에서 보듯 음식 문화에서도 일본은
외래 문화 수용에 적극적이고,
또 이를 자신의 것으로 토착화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것 같다.
미술사학가 곰브리치(E.H. GOMBRICH)는 그의 저명한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18세기에 이르러 서양 미술의 성과를 새로이 접촉하게 되자 비로소 일본의 미술가들은
참신한 주제에 (자신들의) 이러한 전통적인 동양화의 방식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실험이 서양에 알려졌을 때 그것이 유럽 미술에도 얼마나 보람찬 영향을 끼쳤는가(···)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일찍 서양 문물이 들어온 대표적인 무역항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글로버 THOMAS BLAKE GLOVER는 개항과 동시에 일본에 와서 글로버상회를 설립하고

무역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글로버 정원(구라바엔 クラバー園)은 그의 저택이 있는 곳이다.  
정원은 미나미야마테 南山手 언덕에 있고 출입구는 두 곳이다. 정문 격인 제1게이트로 들어가면 경사를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제2게이트로 들어가 나가사키 항을 내려다보며 내려오는 것이 편하다. 이시바시(石橋) 전차역 가까이에
있는 구라바 스카이 로드(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제2게이트까지 쉽게 다다를 수 있다. 


↓제2게이트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옛 미쓰비시 제2독 하우스.
'독 하우스'는 배를 수리하는 동안 승무원들이 투숙하는 시설을 말한다고 한다.
1896년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이층 난간에 서면 나가사키항이 멀리 내려다보였다.
집 앞으로 연못이 있었고  연못 주위로 키가 작고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어있었다.
마당 가장자리로는 우리나라보단 이르게 벚꽃도 한창이었다.



↓푸치니(Giacomo Puccini)가 작곡한 오페라 나비부인은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원 내에는 푸치니와 나비부인의 프리 마돈나로 유명했다는 미우라 다마키(みうらたまき, 三浦環)의 동상이 있다.



↓1863년에 지어진 정원의 주인이 거주하던 구(旧) 글로버 주택.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글로버정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나가사키항의 모습.




↓정원을 산책하는 중에 만난 할머니 두 분.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곁에서 한참을 보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허락을 해주시면서도 무척 수줍어 하셨다.
한 분은 고개를 들지 않고 입가에 웃음을 지은 채 점점 더 그림쪽으로 고개를 수그리셨다.
화창한 봄날에 그림을 그리시는 두 분의 노년이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도 일본 개항과 교역의 창구였던 나가사키를 통해서였다.
글로버 정원 아래 쪽에 1864년에 세워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이 있다.

원폭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복원했으면서도 1953년에 일본 국보로 재지정되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 아내와 앉아 짧은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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