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서 여름까지 종각역 근처에 자주 가야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때늦은(?) 말레이인도네시아어 공부 때문이었다.
낯선 단어들과의 씨름은 힘들었지만 흥미로웠고, 어떤 단어나 상황은
자주 28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할 때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덕분에 그동안 점심을 '혼밥'으로 해야할 때가 많았다.
평소 식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웬만하면 혼밥을 하지 않았지만
막상 여러 번 해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만은 않았다.
마치 혼자 하는 여행이나 혼자 하는 등산처럼 호젓함이 있었다.
혼밥을 해야할 때면 나는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택한다.
아내는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메뉴 - 이를테면 순대국, 설렁탕, 해장국 등등.
종각 근처에는 이름난 노포들이 많이 있었다.
1. 용금옥
용금옥은 1932년 당시 20대 초반의 새댁이었던 여주인이 생계를 위해 추탕을 끓여 팔면서 시작됐다.
용금옥은 그 맛으로 시청 출입객들과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들 사이에 금세 유명해졌다고 한다.
용금(湧金)이 ‘금이 샘솟는다’는 뜻이니 이름대로 간 것이라고나 할까?
해방 공간에서는 좌우익을 불문한 단골집이어서 1973년 서울에 온 북쪽 대표 박성철이
“서울에 아직도 용금옥이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도 있다 하고
1990년에는 북한 총리 연형묵이 서울 체류 동안 두 번이나 용금옥 추탕을 먹고 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정치와 이념으로 땅은 갈렸지만 음식은 가를 수 없는 공동의 추억이자 자산이었던 것이다.
서울식 추어탕인 ‘추탕(鰍’湯)은 조리법이 여탸의 추어탕과 다르다.
소고기와 곱창을 넣어 끓인 육수에 삶은 미꾸라지를 넣고 여기에 여러가지 버섯류와 파, 호박 등 다양한 부재료를 추가한다.
최근에 더해진 것인지 이번에 보니 유부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2. 이문설농탕
1904년에 이문옥으로 창업을 했다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식당이다.
해방 후 서울시 음식점 허가 1호라고도 한다.
장소를 옮긴 탓에 최초의 건물 흔적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이 아쉽다.
아무튼 설렁탕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식당이다.
아내가 설렁탕을 좋아하면 좀 더 자주 오고 싶은 곳.
3.청진옥
청진동 해징국 골목이 유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개발로 거의 다 사라지고 1937년에 개업한 이름난 청진옥은 르메이에르라는 '아파트형 식당' 건물로 옮겨져 있다.
큼지막한 선지와 시래기 들어간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깍두기에 먹는 맛!
4. 시골집
시골집은 YMCA 뒷쪽에 있다.
70년 대 이곳은 대입단과반 학원들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내게 기억된다.
YMCA학원, 제일학원, 경복학원 등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별로 와보지 못한 곳이다.
언젠가 서울에 업무 출장을 왔을 때 근처에서 근무하던 거래처에서 이곳으로 안내하여 알게 된 곳이다.
정겨운 시골집 문간방 같은 작은방에서 먹는 두툼한 소고기와 선지가 들어간 장터국밥.
혼밥이 필요할 때 피해갈 수 없게 만든다.
5. 북어국집
이곳은 아내와 근처에 외출할 때면 자주 들리는 곳이다.
아내와 나는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식당이라고 평가한다.
한 그릇에 7,500원이라는 이른바 가성비를 따지면 더욱 그렇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눈에 띈다.
사골국물에 끓여낸 구수한 북어국에 부추김치를 곁들이면 풍미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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