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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일본

오키나와(끝) - 책으로만 가 본 토카시키섬(渡嘉敷島)

by 장돌뱅이. 2018. 12. 9.

빨간 기와집


배봉기씨는 1914년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실종과 가난을 겪으며 힘들게 성장하였다.

결혼 생활마저 실패하여 떠돌던 중 '과일이 지천이라 나무 밑에 누워 입만 벌리면 바나나가 떨어지는 곳에서
먹고 살 수 있다'는 위안부 '업자'의 말에 속아 1944년 열차에 올라 오키나와의 토카시키섬(으로 끌려왔다.
섬의 빨간 기와집에서 배봉기씨는 '아키코'로 불리며 다른 7명의 조선인 위안부와 함께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되었다.

모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운좋게 살아남았고 마침내 조국이 해방되었다지만 명분상으로는 '황국신민'이던 배봉기씨는
오키나와의 폐허에 내던져졌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 어떤 땅인지 모르는 데다 먹고 살기 위한
어떤 대책도 없이, 토박이들조차 하루하루를 살기 힘들던 패전 직후의 오키나와를 떠돌며 살아야만 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 땅으로 복귀되자 이번엔 불법체류자로 분류되어 배봉기씨는 강제 추방 대상이 되었다.
3년의 유예기간 안에 신청하면 특별체류허가를 내준다는 조치가 있자 배봉기씨는 그것을 신청했다.
신병 치료를 위해 최소한의 도움을 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관의 취조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위안부로 끌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성 노예' 최초의 증언이 된 것이다.

배봉기씨는 한 평 정도의 크기에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의 오두막에서 수도도 가스도 없이 살았다.
방바닥은 지면에서 30센티미터 정도여서 큰비나 태풍이 올 때는 물이 방바닥을 위협하며 아슬아슬하게 올라올 정도였다.
매우 더운 오키나와의 여름에도 문을 꼭 닫고 옹이구멍과 모든 틈새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얇은 판자벽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배봉기씨는
사람을 피해 살았다. 
견디기 어려운 두통에 시달릴 때면 문득문득 가위로 자신의 목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자기 인생을 저주했다. 배봉기씨는 1991 10월에 오키나와 나하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치 들개 사냥처럼 마구잡이로 잡혀 고향을 떠난 여자들의 행방이 가족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위안부로 전쟁터에 투입된 여자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였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도 없다.
하물며 전쟁터로 보내진 여자들 가운데 몇 만 명이 살아남고 몇 만 명이 죽었는지는 오리무중 상태다."

이상은 일본인 작가 가와다 후미코(川田文子)가 10년에 걸친 배봉기 할머니의 구술 증언을 정리하여 펴낸 책
『빨간 기와집』을 근거로 한 것이다.

묻고 싶다.
배봉기씨에게 조국은 무엇이며 조국에게 배봉기씨는 어떤 존재인가?
일본이라는 국가가 힘없는 여성에게까지 참혹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지키거나 이룩하려던 것은 무엇일까?
종전 후 7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죄나 배상은커녕 배봉기씨'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의 오만과 야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에게 전쟁이 끝나기나 한 것일까?
그리고 일본의 그런 태도에 배봉기씨'들'의 조국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날씨 때문에 토카시키섬의 배봉기씨'들'을 위한 "아리랑위령비"는 가보지 못했다.
섬주민들의 모금으로 세운 위령비라고 하니 뜻밖이면서도 의미가 깊다.
배봉기씨와 또 다른 배봉기씨'들'의 명복을 빈다.


비극의 토카시키섬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오키나와전의 기억과 그림전 - 희생)


오키나와 전투는 1945년3월26일 시작해 같은 해 6월23일 끝났다.
미군의 본토 진입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일본은 '전쟁을 이 섬으로 끌여들인 것이다.'
그 결과 80여 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8만 명이 넘는(20만이라는 말도?) 일본군과 미군이 죽었다
오키나와인은 민간인 9만4천명을 포함 무려 1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가 60만명이었다고 하니 5명 가운데 1명이 전쟁 중에 숨진 것이다.


현실의 한쪽은 거의 언제나 아수라장이다. 아수라장을 만들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전쟁과
자본의 폭력을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한심한 권력자들에게 배낭을 들려주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당신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지도 한 장을 들고 다녀와보라고, 가난한 여행을 보내고 싶어진다.
자기의 땅 바깥에, 자기 집 바깥에 무수한 집들이 있음을, 그 집의 주인들이 누구나 자신처럼 자기의 집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를까. 같은 맥락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거리에서도 새로운 사
랑이
싹트고 총알이 꿰뜷고 간 테이블 위로 결혼식 축가가 울려 퍼질 수도 있는 이 질기디질긴 산 자들의 생명력을 그들이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해진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위로하며 기어코는 상처를 치유하는 쪽으로
움직여간다는 이 기막힌 진실을 두 눈으로 보게 된다면, 살고자 하는 모든 목숨 가진 존재의 눈물겨운 유대와 연대의
끈질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이 별의 도처에서 여전한 폭력의 전횡들이 얼마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공상하기도 한다.

                                                                                                  - 김선우의 『김선우의 사물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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