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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2006 방콕의 하루3 - 스쿰윗에서 카오산까지.

by 장돌뱅이. 2012. 4. 23.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 대신에 쏘이 26의 국수집에서 30바트짜리 물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엠포리움 이층의 오봉뺑 AU BON PAIN 에서 국수보다 비싼 카푸치노 커피를 마셨다.
어느 글에선가 식사는 분식집에서 라면으로 때우더라도 커피는 ‘노블하게’ 호텔 커피숖에서
블랙으로 마신다는 속물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하며 아내와 웃었다.

쏘이 24 바디튠에서 어깨와 목 맛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뒹굴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위 사진 : 식당 KUPPA에서의 중식.

스쿰윗 쏘이16에 있는 식당 KUPPA.
서양음식과 태국음식을 파는 깔끔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주문한 시금치 샐러드와
시푸드 파스타, 그리고 태국 음식인 무양 등의 맛도 수준급이었다.


*위 사진 : 끌롱 싼셉.

식사를 마치고 싼셉운하 KHLONG SAEN SAB로 갔다. 빠뚜남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민주기념탑까지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택시운전사가 “끌롱 싼셉”이란 나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오성(五聲)인 태국발음을 생각해서 억양을 올렸다 내렸다
여러 가지로 시도를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거 서울에서 남대문을 남도문이나 남두문으로 발음한다고 못 알아먹나?
안성기나 안송기나 배용준이나 배응준이나? 외국인 발음이 뻔한 거지? ”

내가 구시렁거리자 아내가 나의 억지를 가라앉혔다.

“남도문 정도가 아니라 당신의 발음이 ‘놈도먼’ 정도쯤 되겠지.”
“‘놈도먼’?...”  하긴 그런 정도라면 못 알아 먹긴 하겠다.
“싼셉”을 포기한 채 택시기사가 알아먹는 빠뚜남으로 합의(?)를 보고 가는 도중
다리 위에서 운하를 손으로 가리켰더니 이 양반이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오! 끌롱싼셉!” 한다.
“그래요! 끌롱싼셉!” 이제야 알겠냐고 내가 의기양양해서 맞장구를 쳤더니
“노! 노! 싸엔셉!” 한다.
“아 그래요! 싸엔셉!”
“노! 노! 노! 싸엔셉!”
“환장하겠네. 똑같이 따라하는데 왜 그래요? 싸엔셉!”
“노! 노! 노! 노!...싸엔셉!”
“밤에 밤 먹고 싶다고 하면 깜깜한 밤이 아니라 밤색 밤을 말하는 거지 참 내!
싸안셉, 싸언셉, 싸온셉, 싸운셉.....”
빠뚜남에서 내릴 때까지 반복했지만 나의 발음은 결국 택시기사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아내의 발음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역시 무허가 외국어 강사들은 사회문제야!
나는 앞으로 세종대왕을 더욱 존경하기로 마음먹고 차에서 내렸다.


*위 사진 : 싼셉운하를 달리는 수상버스와 물가의 집.

끌롱싼셉의 수상버스는 기회가 된다면 한번 타보는 것도 괜찮겠다.
냄새나는 물에 운하 양쪽으로 늘어선 허름한 집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이지만 현대식 건물이
늘어선 메인도로의 뒤쪽에 아직 이런 교통수단이 남아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차가 막힐
때는 택시보다 이동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지상철에 이어 지하철까지 개통된 방콕에서
이 운하의 수상버스는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의 협궤철도처럼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왓사켓 WAT SAKET 을 갈 때라면 바로 코앞에서 내릴 수 있어 편리하다.


*위 사진 : 왓사켓과 꼭대기에서 본 방콕 풍경.

인공적으로 조성했다는 왓사켓에 오르니 사방으로 방콕 시내의 모습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였다. 아내와 나는 한쪽 담장 아래 앉아 황금색 탑을 도는 사람들의 탑돌이와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종교를 가져 본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진지한 기도에는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경건해진다.

왓사켓에서 나와 파쑤먼 PASUMEN 요새 옆의 강변으로 갔다.
달은 뜨는 것이 좋고 해는 지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던가.
삔까오 다리 위에 걸린 해는 붉은 빛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파쑤먼요새 주변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매끄럽게 저녁 강물 위로 번져나갔다.
평화로웠다. 아내와 강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손잡고 바라보는 저녁 해에 더하여
삶에 욕심낼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카오산 길거리에서 발맛사지를 받고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 이리저리 흘러다니다
‘미스터타일랜드’를 만났다. 2000년부터 카오산에 등장하였다는데, 어느 덧 이 거리의
명물로 자리를 잡은 듯 하다. 그를 염두에 두고 카오산에 오지는 않았지만 그를 보는
순간 바로 인력거에 올라탔다.
요란한 음악과 도저히 통과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그의 운전 솜씨가, 그리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환호가 박수가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위 사진 : 식당 낀롬촘싸판에서.

낀롬촘싸판 KINRONCHOMSAPAN 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내와 내게 음식은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라마8세 다리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부딪힌 싱하 맥주 한 잔은 오래 남겨두고 싶은 기억이다.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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