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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13 - 김시천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

by 장돌뱅이. 2019. 6. 6.

샌드위치 데이를 낀 연휴의 시작은 손자친구와 함께였다.
하루종일 기차놀이와 보물찾기, 병원놀이와 솔방울 구멍에 넣기, 그리고 놀이터에서
미끄럼과 그네를 번갈아 
타거나 날린 비행기를 쫓아 운동장을 뛰어다니기도 하며 보냈다.
그래도 아직 아쉬움이 남은 강철 체력의 친구는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친구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장난감이고 놀이의 대상이다.
길 위에
떨어진 솔방울과 개복숭아에서부터 가구의 벌어진 틈새나 문 뒷쪽의 작은 공간, 신발이나 양말,
작은 구슬이나 병뚜껑, 종이컵 등등
일상의 흔한 것들과 짜릿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상력과 호기심을 가졌다. 
친구를 따라다니면 세상 곳곳이 흥미진진한 신비함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게 된다.

친구와 지내다 돌아오는 길은 온몸이
더없이 개운하다.
함께 한 시간에 비례하여 몸과 마음에서 불순물이 빠져나간 느낌이어서 피곤함엔 나른한 즐거움이 스며있다.  
그러면서 켕겨오는 한 가지.
오늘 하루 나는 또 얼마나 많이 친구를 가르치려드는 '꼰대짓'을 했을까?
'뛰지마라. 조심해라. 위험하다. 손을 잡아라. 천천히해라 ······.'
오늘 친구가 말했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육십세 살 형아'가 되면 그거 할 수 있어!"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열을 가르치려는 욕심보다
하나를 바르게 가르치는 소박함을
알게 하소서
위선으로 아름답기보다는
진실로써 피 흘리길 차라리 바라오며
아이들의 앞에 서는 자 되기보다
아이들의 뒤에 서는 자 되기를
바라나이다
당신에게 바치는 기도보다도
아이들에게 바치는 사랑이 더 크게 해주시고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깨우쳐주소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주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꽃처럼 가꾸는 기쁨을
남몰래 키워가는 비밀 하나를
끝내 지키도록 해주소서
흙먼지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들을 결코 배반하지 않게 해주시고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와
그들 곁에 순한 바람으로
머물게 하소서
저 들판에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 또한 착하고 바르게 살고자 할 뿐입니다.
저 들판에 바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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