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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일본아,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by 장돌뱅이. 2019. 7. 25.


식민주의의 본질은 폭력이다.

식민지의 자원과 인간에 대한 수탈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식민국의 야만적 폭력이다.
그것은 종종 문명, 개화, 개발, 경제, 교역, 교육, 선교 등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질적으로는 총과 칼에 의해 자행된다.

식민지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구조는 몰론 모든 유무형의 재화와 가치들은
식민국의 목적에 맞게 왜곡되고 종속된다. 식민지에게 독립적인 것은 없다.
식민지의 어떤 변화도 결국 식민국의 이익을 위해 기획되고 실행된 것일 뿐이다.

일제 강점기 역시 본질은 수탈과 수탈 위한 폭력이다.
역사 시간에 배웠거니와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을 위한 쌀 공급 '창고'와
침략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화라는 기형적인 변화를 강요받았다. 
조선의 민족경제는 몰락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는 성장 발전했다.
조선 민중은 빈곤으로 내몰리고 일본 자본가는 풍요로워졌다.

그 와중에 어떤 부문이 지표(指標) 상의 성장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성장이었을 뿐이다. 
학교 숫자가 늘었으니 신식 교육의 기회가 늘었다고 주장하기 전에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교육 목표가
식민지 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중간 관리자나 단순 기능인의 양성, 나아가 조선혼과 조선인의 말살에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땅히 폐기 처분 되어야 할 낡은 식민주의의 망령들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 일본의 치졸한 전략적  '수출 규제'(경제 침략?) 있기까지 저들의 궤변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합법적이었고 한반도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
 합방으로 조선인은 일본인이되었으므로 조선인의 강제징용은 없었다.
 '국민징용령'에 따른 합법징용이고, 위안부' 또한 자발적인 매춘부일 뿐이다.
 따라서 일본은 일본 지배에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
 1965년 박정희 정권 시절 타결된 한일협정에서 일본의 사과는 언급되지 않았다.
 청구권 문제도 배상금이 아닌 인도적 지원금 3억 달러일괄 타결 되었다.
 이 돈은 한국 경제 발전에 종잣돈이 되었다.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권과 2015년 '합의'로 일본으로부터 10억엔의 위로금을 받아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는 것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 되었다 등등.


일본의 우익 정권의 망발은 그렇다치고 그런 그들에게 분노와 비판을 보내기는커녕 (조국이 SNS에서 밝혔듯),
"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한국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는 일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의 정략적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 일본인의 망언이 딛고 서 있는 우리의 내적 근거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던 학창 시절에 읽은 이영희 교수의 글이 생각나기도 한다.
억측이라해도 최소한 저들에게 '청구권 협정 위반'나 '위안부 합의 위반'이라는 빌미를 준 세력, "우리의 내적 근거" 말이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의견 표시와 행동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선을 긋고 살 수는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 날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뤄둘 필요도 없다.

  
시인 김광섭은 「벌」이라는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아 너는 물러갔느냐/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지금 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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