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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추석에 본 영화 『마션 MARTIAN』

by 장돌뱅이. 2019. 9. 19.

영화를 보는 방법이 극장에 가거나 아니면 텔레비전의 혹은 국경일이나 크리스마스, 석가탄신일 등에 방송국마다 내놓는 "특선영화" 뿐이던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엔 명절 연휴를 앞두고 신문에 안내된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볼펜이나 색연필로 표시를 해놓곤 했다.

요즈음은 케이블 방송에서 하루 종일 영화만 방송해주기도 하고, 많은 다른 방법으로 영화를 볼 수 있으므로 텔레비젼을 통한 영화 감상 의존도는 낮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일부러 그런 걸 챙겨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명절 연휴 때면 텔레비전에서는 변함없이 영화를 상영한다.

이번 추석에는 실로 오래간만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특선영화"를 보았다. '추억과 백수의 결합'쯤이라고나 할까? 아내도 곁에 앉았다. 영화 『마션 MARTIAN』은 그렇게 보게 되었다.

영화 『마션 MARTIAN』은 『에일리언 』,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등의 수작을 만든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감독의 작품이다. 화성 탐사 중 사고로 홀로 남겨진 한 사람 - 그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와지구의 나사(NASA) 팀원들의 숨 가쁜 송환 구조 노력이 『마션』의 내용이다.

영화는 제작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NASA의 검증을 받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우주공학적인 내용보다 구출될 때까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전직 식물학자였던 주인공이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화성의 흙에 탐사대원의 똥을 거름으로 섞고 과학적인 기지(機智)를 활용하여 감자 재배에 필요한 수분을 확보했다.

감자는 재배기간이 비교적 짧고 건조하고 서늘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며 수확량이 많은 작물이다.
그리고 비타민C, 아미노산, 티아민 등의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다. 특히 단백질 함량은 밀의 약 2배, 쌀과 옥수수의 1.2배에 달한다고 한다. 아마 그런 이유로 화성에서 제배를 하는 것으로 영화 속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인류가 우주의 비밀을 풀고 화성에서 생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이제까지 과학은 인간의 상상을 현실화시켜왔으니 한참 뒤의 일이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주로의 진출이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담보하거나 증진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든다. 혹 지구적 모순이 그대로 투사되거나 투사된 모순이 되돌아와 다시 지구의 모순을 확장 ·심화하는 과정으로 순환되는 건 아닐까?

『마션 MARTIAN』과  같은 감독이 1982년에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미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화려한 야경의 LA, 숲을 이룬 마천루, 하늘은 날아다니는 자동차, 개발 중인 행성으로의 이주를 권하는 광고.

그렇듯 세상은 최첨단의 과학 위에 서있는 듯 하지만 도시는 황량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다. 핵전쟁과 대기 오염으로 태양이 가려져 밤인지 낮인지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쉬지않고 내리는 비, 축축하고 지저분한 거리, 건물의 벽을 장식한 일본 상품 대형 광고판과 일본어 네온사인.
(영화 도입부의 이 유명한 장면은 영화가 만들어진 1980년대 초반의 일본 자본의 기세에 대해 미국이 느끼는 공포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영화 제작 시기보다 몇 년 뒤의 일이지만 1989년 일본 회사 소니가 미국의 영화 제작사인 컬럼비아사를 인수했을 때, 미국의 언론은 '미국의 영혼이 팔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다행히(?) 그 시절 일본의 기세가 '거품'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영화 속 거대한 타이렐사(社)는 인조인간(REPLICANTS)를 제작하는 한편, 그들을 먼 행성으로 보내 "오프월드(OFF-WORLD)"라는 우주 식민지를 건설 중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곳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하지만 우주 식민지에서는 인조인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 중 일부는 4년으로 설계된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지구로 잠입한다.
그들을 처단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바로 "블레이드 러너"이다.

'초연결성(Hyper-connected)'의 과학과 자본 앞에 인간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존재일 뿐이며 급기야 본인의 정체성까지 잃어버린다. 인조 인간과 진짜 인간의 경계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도)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쌓아 올린 바벨탑 같은 탐욕의 자충수가 빚어낸 종말적 상황이다.

영화 속 대사는 인조인간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과학과 자본이 바라본 인간에 대한 시각인지도 모른다.

"Replicants are like any other machine.
They're either a benefit or a hazard."
(인조인간은 다른 기계와 같아.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야.)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이다.
1982년에 37년 뒤의 세상을 상상한 것이다. 영화처럼 현재 인간은 우주로 나가 살지 못하고 자동차를 타고 하늘을 날지 못한다. 인조인간도 없다. 하지만 우주여행이 곧 상업화 된다고 하고, 드론이 하늘을 날며 복제동물들이 탄생하고 있다.

최근에 4차산업혁명에 대한 짧은 강의를 들었다.
'제3의 물결'을 넘어 4차산업혁명의 와중에 있는 지금도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과학의 새로운 진보가 가져올 강의 속 미래 세상엔 이전 3차산업혁명까지보다 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일상생활의 변화가 예고되어 있었다.  "초연결성, 초지능화(Hyper-intelligent)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 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변화될"(다음백과) 미래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술 개발에 따른 변화와 통제의 주체가 몇몇 거대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현실에서 보통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의 다양성이나 총체성은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암울하지는 않더라도 '빅브라더' 앞에서 사람들의 삶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의 다양성이란 대량생산된 청바지 중에 내게 마음에 드는 모델을 집어드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 않는가? 누구나 느낄 수 있거니와 일이십 년 전보다 확실히 우리의 일상은 대기업의 '상품'에 종속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골목상권의 몰락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개미』로 유명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표 전쟁」이라는 단편 소설을 통해서 국가보다 기업의 영향력이 비대해진, '있을 법한' 미래 사회를 그렸다. 막강한 자본의 초국적 기업들이 학교, 병원, 군대, 도시를 소유하고 나아가 우주 개발에까지 나서게 된다. 사람들은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 대신에 프랑스 르노인, 미국 애플인, 일본 소니인이라 사용하다간, 소속 국가를 생략하고 그냥 마이크로소프트인, 디즈니인 등이란 신조어를 사용하게 된다. 한국엔 삼성시티라는 사설 잠수함 부대까지 갖춘 항구 도시가 생겨난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강사는 "ARE YOU READY?"라는 경쾌한 멘트로 4차산업혁명 강의를 마무리하였지만 나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다만 변화의 끝자락을 어리둥절한 채로 허겁지겁 따라갈 뿐인 걸.
문득문득 '빅브라더'의 고삐 풀린 독주를 막기 위한, 혹은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버팅길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볼 뿐이지만 신통한 지혜가 나오지도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무사귀환한 영화 『마션』의 주인공은 대충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매일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일을 생각했다.
일을 하다 보면 문제가 나오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또 문제가 나오고 또 해결하고······"
특별한 비법이 없다. 지구에서와 별다를 게 없는 평이한 일상에 몰입하는 일이 그를 살린 것이다.

어떤 세상이 와도 밥 먹고 똥을 싸는 게 변함없다면 지혜는 변하지 않는 것에도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변하는 것에 대응한다(以不變 應萬變)'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가까운 사람들과의 어울림과 나눔, 사랑 같은 거······
변화가 두려운 '꼰대'의 넋두리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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