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아내와 함께 본 연극.
작년 연말 친구와 부부 동반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연극을 본 이후 처음이다.
그렇게 지난 일년은 가까운 이를 멀리 떠나보내는 시간으로 일상의 많은 것들을 접어두어야 했다.
아니 이별과 그가 머물 먼 곳을 생각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쉬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여행자는 가르쳐준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이별이기에 ― 생명이라는 것을.
- 김화영,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
바람이 서늘해지면서 그러지 않아도 연극이나 뮤지컬 정보를 찾아보던 차에
지인이 자신이 연출한 연극 「괴짜 노인 하삼선」의 공연 소식을 알려주었다.
공연이 저녁 8시에 시작하므로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식당
"밥짓고 티우림"에서 약식(略式) 한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음식 플레이팅과 나오는 과정이 다소 산만하긴 했으나 대중화 된 가격의 한정식임을
감안할 때 이른바 '가성비'는 괜찮은 곳이었다.
나온 음식 중에 나는 수육을 아내는 김치전을 제일로 꼽았다.
식당에서 나와 대학로까지 지하철 한 정거장의 거리를 걸었다.
날씨가 선선하여 걷는 맛이 나는 저녁이었다.
대학로에 와서도 시간이 남아 어둠과 불빛이 함께 짙어가는 거리를 한참동안 오르내렸다.
공연장에서 가까운 2층 커피숖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기도 했다.
아내와 대학로에 나오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그래서 첫 소절만 생각나는 옛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연극 「괴짜 노인 하삼선」은 한마디로 '모범 동화'였다.
익히 다음 장면이나 결론이 예상되는 다소의 진부함에,
막간 무대 장치의 변화도 없이 조명으로만 시각이 이동하는 단조로움도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바로 그 이유로 편안하게 보았다.
스펙터클한 무대나 짜릿한 스토리, 거대 담론이나 심오한 메시지도 필요하겠지만
때론 일상 속 작고 흔한 소품 같은 이야기도 삶에 위로가 되지 않던가.
공연이 끝나고 지인 덕분에 주연 배우 「괴짜 노인 하삼선」과 무대에서 사진을 찍어보는,
이제까지 연극 관람에는 없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조명 탓에 빨갛게 나온 아내의 머리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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