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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손자친구가 오면 '끝'이다?

by 장돌뱅이. 2019. 12. 9.


†참치 타다끼


↑더덕구이


↑해물잡채


↑영양부추 차돌박이 무침 


"할아버지! 밥 먹고 또 나하고 재미있게 놀자!"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손자친구가 하는 말이다.
노는 시간의 시작은 친구에게 전적으로 달렸다.
친구는  숟가락을 놓으며 외친다.
"할아버지 이리 와요."
그래서 아내는 내게 친구가 '식사 끝'이라고 선언하기 전에 부지런히 내 몫의 식사를 마치라고 충고를 한다.
친구와 만나면 나의 개인적인 시간은 '끝'이다.
잠깐 화장실에 가도 볼 일 보는 내내 문을 두드리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한다. 

딸아이네 가족과 집에서 식사를 한 날.
아내와 사전에 의논하여 딸아이와 사위가 좋아할만한 음식을 골랐다.
주로 일년 가까이 노노스쿨에서 배운 메뉴로 나로서는 나름 총결산의(?) 의미도 있었다.

재료 손질과 소스, 그리고 초벌 준비까지 끝내고 손님들을 기다렸다.
도착시간에 맞추어 마지막 손질을 하여 그릇에 예쁘게 담아낼 생각이었다. 
배추전은 맨 마지막에 부쳐내려고 배추잎을 다듬고 부침가루 반죽까지 끝낸 상태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우선 몇 가지 전채(前菜)를 천천히 먹고, 국과 밥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식사 순서를 잡았다.
친구를 위해선 자극적이지 않은 소고기무국과 잡채, 그리고 백김치를
 준비했다.

그런데 딸아이네가 앞선 일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 곧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다.
아내와 나는 화들짝 놀라 서둘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돌프 사슴 복장을 한 친구는 큰 목소리와 함께 내게 달려들었다.
"할아버지!"

그리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친구는 텔레비젼에서 뽀로로를 보며 할아버지에게 잠깐만 시간을 달라는 나의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빨리 이리 와요. 빨리 와요."
정신이 없이 불러대는 통에 나는 부치던 전을 포기해야 했다.
더불어 장식을 고려한 플레이팅이나 느긋한 한담과 함께 하는 식사 모두 물 건너로 보냈다.
가까스로 준비를 끝낸 타다끼와 더덕구이를 빼곤 나머진 대충 그릇에 담아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친구와 노는 사이에 아내와 딸아이 부부가 식사를 했다.
나는 국에 말은 밥을 마시듯 먹는 것으로 식사를 때우고 쉴 틈 없이 친구와 어울려야 했다.




친구는 졸음을 견디며 밤 11시가 가깝도록 놀다가 갔다.

손자친구가 오면 '끝'이다?
그렇지 않다. 내겐 새로운 즐거움의 시작이다.
까짓 음식이 그보다 큰 의미일 순 없다.
손자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하지만 내겐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친구가 놀며 어질러진 자리엔 친구의 재잘대던 목소리와 깔깔거리던 웃음소리가 오롯이 남아있다.
나날이 부족해지는 건 한가지 내 체력일 뿐이다.
"그래도 친구야! 다음에도 또 할아버지랑 재미있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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