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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by 장돌뱅이. 2019. 12. 14.

1. 『길버트 그레이프』

 


길버트는 작은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돌본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자살을 했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초고도 비만의 상태로 집에서만 생활을 한다.
남동생은 지적장애가 있다. 누나는 무기력한 실업자이고 여동생은 반항적이다.
길버트에게 삶은 너무 무거운 짐이다.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좌절하는 길버트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차를 몰고 멀리 탈출을 시도했다가도 끝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굴레?

원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남동생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는 길버트에게 새로운 앞날과 가족은 희망이 될까?  
어디에도 그런 보장은 없지만 그러길 기대해 볼 뿐이다.

 

2.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 속 누군가
가족은 우연히 유전적으로 비슷한 세포를 가진” 관계일 뿐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장례로 모인 가족들의 모습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막장'이다.
갑자기 자살한 아버지는 물론이고, 암에 걸린 독설가 엄마와 , 이혼 위기에 놓인 큰 딸,
사촌 오빠와 사랑에 빠진 둘째 딸,
언니의 어린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한심한 남자와 열애 중인 셋째 딸,
그리고 더 큰 비밀과 문제를 안고 있는
이모. 

어쩔 수 없이(?) 모인 장례라는 형식의 시간엔 함부로 열어젖힌 서랍 속의 내용물처럼
개별적인 문제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파생된 문제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화해를 위한 어떤 실마리도 없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앞선 영화 속 길버트처럼 '굴레'의 의미가 강했다.
사람들은 '굴레'를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굴레'는 종종 애정과 위로라는 울타리가 되기도 했다.
이제 사람들은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 한다. 더불어 관계의 해체도 이야기 한다.
이른바 '혼밥'과 '혼술'이 흔해진 이 각개약진의 끝이 무엇일지 가늠하기 힘들다.
영화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처럼
더 이상 막장일 수 없어 차라리 희극이 되는 가족의 상상은 끔찍하다.
그렇다고 예전의 '굴레'나 '울타리'의 강조는 어딘지 꼰대 냄새가 난다. 


이제 가족이란 정말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할까?


3. 『철원기행』


평생을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가 정년 퇴임을 하는 날.
어머니와 큰 아들 부부 그리고 막내 아들이 아버지 퇴임식이 있는 철원에 모인다.
가족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밑도 끝도 없는 폭탄선언을 한다.
"이혼하기로 했다!"
즉각적으로 가족들의, 특히 어머니의 "왜?"라는 질문과 원망이 뒤따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왜 그런 선언을 했는지 이혼은 정말 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혼자 살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결별이라는 마지막 결심을 할 때까지 가족 중 왜 이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충격이 가라앉으며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이 다가온다.
눈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갈 길이 막힌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2박3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우연한 짧은 동거는 가족들에게 서로의 사정과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처지와 생각을 인정하거나 최소한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관계일까?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족은 언제나 그냥 지당하고 당연하게 가족일까?  
좀 더 진지해야할 문제들을 나는 가족이라는 '지당과 당연'의 논리로 포장하여 '이해한' 적은 없었을까?



4. 『걸어도 걸어도』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한다.
그는 잔잔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해석과 질문의 여지를 심어 긴 여운을 남기는데 탁월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아내와 나는 『
걸어도 걸어도』다.

오래 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죽은 장남의 기일에 가족들이 모인다.
가족은 저마다 말 못할 비밀이 있고 서로에게 아쉬움이 있다.
'인생은 조금씩 어긋나는 법'이라고 했던가?  
자식은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고 부모는 자식이 바라는 것을 모른다.
은퇴한 남편은 자상하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가장 서늘하고 가슴 아팠던 장면.
아내는 옛 노래 '부루라이또 요코하마'를 즐겨 듣는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취향을 타박한다.
아내는 그 노래가 젊은 시절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불륜의 상대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고 조용히 말한다.
아이를 업고 남편을 찾아갔다가 남편의 노랫소리를 듣고 돌아나오며 레코드판을 샀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드러내면서도 아내의 태도는 심상(尋常)하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いていても のように)”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으로 흔들리며 산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화해나 희생의 '허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늙은 아내의 옛노래처럼 잠재된 사연과 갈등은 만만찮지만 
크게 모나지 않고 둥글고 따뜻하게 살아가 뿐이다.

어긋나는 삶의 궤적을 나도 그렇게 조금은 너그러이 공글리며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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