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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잘 먹고 잘 살자 61 - 야채를 씻는 이유

by 장돌뱅이. 2020. 3. 19.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거칠 것 없이 자유롭고 호방한 언행으로 유명했다. 
당시의 권력자
 알렉산드로스의 접근을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키시지"라며 그 자리에서 내쳐버릴 정도였다.
마치 '고작 왕에 지나지 않는 당신이 '세계 시민'으로 자처하며 자유인인 내게 뭘 해줄 수 있다는 거냐?라는
식의
굳건한 자기 확신에서 나온 파격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야채를 씻고 있을 때 플라톤이 말했다.
"그대가 디오니시오스 왕에게 봉사했다면 지금쯤 야채 따위를 손수 씻는 일은 없었을 텐데."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통렬했다.
"그대가 스스로 야채 씻는 법을 알았다면 디오니시오스 왕 따위에게 봉사하면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디오게네스가 거리에서 민중과 함께 살아왔다면 플라톤은 귀족과 밀착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디오니시오스 왕은 잔인한 전재군주였다.

음식을 만들며 가끔씩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떠올린다.
감히 대 철학자와 나를 비교해 보는 터무니 없는 오만에서가 아니라
늦게라도 '야채 씻는 법'을 깨우칠 수 있었서 다행이라는 생각에서다.
사람들은 퇴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들을 보낸다.
내겐 음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과이다.
처음 요리를 만들어 본 것은 8-9년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아내를 대신해 부엌일을 맡은 시기는
딸아이를 결혼시키고 난 후부터이니  대략 6년 쯤 되었다.
내가 만들어 식구들과 나누는 음식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났을 때와 같은 성취감을 준다.
기분이 즐거울 때, 식구들이 유난히 사랑스러워 보일 때, 아니면 기분이 꿀꿀 할 때조차도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속이 뿌듯하게 차오르거나 날을 세웠던 감정이 무뎌지곤 한다.


↓봄동전.
봄동 겉저리와 봄동 된장국에 이어 봄동 요리의 완결편(?)으로 만들어 보았다.
3월 초순이 지나자 마트에서 봄동의 철이 끝났다.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1988?category=693050 )


↓시금치된장국
자연의 향기가 사라져 '무늬만' 남은 재배 냉이국이나 쑥국보다 더 만족도가 높았다. 


↓콩나물비빔밥.
양념장에 고추장아찌를 넣는 것이 특이했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호평을 받아 앞으로 당분간은 자주 해먹어야 할 것 같다.

다져서 볶은 소고기 고명을 빼먹고 사진을 찍었다. '깜빡병'이 도처에서 자주 출몰한다.


↓참치볶음밥.


하와이김밤
재작년인가 오키나와 국제거리 시장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
맞은 편 식당에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며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뭔가 하고 대열의 처음으로 거슬러 따라가보니 김밥을 팔고 있었다. 
식당 이름은 "포크타마고(ポークたまご) "였다. 스팸과 달걀을 넣은 김밥은 네모난 모양을 빼곤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장사진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귀국길에 오키나와 공항에도 분점이 있어 맛을 볼 기회가 있었다. 
재료의 단순함에 비해 맛이 좋았다. 


*포크타마코의 김밥

집에서도 한 번 해먹자고 했다가 잊고 지냈는데, 며칠 전 최고의 요리비결』이란 책에서
"하와이김밥" 이름으로 그 김밥을 보게 되어 시도를 해 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내 솜씨는 기억 속의 맛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이름이 하와이김밥일까?


↓부엌이 전적으로 내 영역인 듯 말했지만 우리집의 '대장금'은 여전히 아내다. 간만에 아내가 코다리강정을 만들었다.
내가 작년엔가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해 실패한 음식이었는데 아내는 잠깐 사이에 맛깔스럽게 만들어 내놓았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손자를 위해서는 간장 소스를 입힌 강정까지 별도로 만들었다.
별다른 장식이나 고명을 올리지 않았어도 아내가 만든 음식에선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위엄 같은 것이 풍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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