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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세월호 6주기

by 장돌뱅이. 2020. 4. 17.

*천 개의 바람이 되어(노래:임형주)



덧붙일 말조차 없어지는 기억. 
글을 읽으며 어린 별들을 떠올려 본다.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픈 이유다.

누가 그랬던가?
"침몰하지만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것 침몰한 후에는 침몰하는 일은 언제나 일어났던 일로 
만들어내는 것 침몰하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 되게 하는 것 세계의 상식적인 질서가 되게 하는 것 " 
그래서 "책임은 소멸되고 비참은 오직 관리될 뿐"이라고.
아직 잊을 수 없는 이유다.



 '과연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476명이 탄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상황에서 해경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의문은 결국 이 질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것을 다 챙깁니까?" 목표해양경찰서장의
항변은 현장의 해경은 물론 해경 지휘부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기록팀은 객관적인 자세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구할 수 있었다!"

 재난 구조는 신의 영역이 아닙니다. 국가의 일입니다. 시민들은 재난 현장에서 공무원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법과 규정에 정한 대로, 권력을 행사할 때 내세우는 명분에 합당한 수준의 책임감과 판단력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라고 요구할 뿐입니다.

 '세월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몇 장면을 기억합니다.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기관장을 포함한 간부 선원들은
일찌감치 모여서 기다리다가 해경이 도착하자마자 도망쳤습니다. 선원의 임무를 다한 사람은 사무장 양대홍 씨와 하급 선원
정현선, 박지영, 안현영 씨뿐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 멀찌감치 떨어진 123정은 "어선들 철수해, 철수하라고"라고 방송하며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업지도선과 어선들은 위험을 감수한 채 세월호에 달라붙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끝까지 안간힘을 썼습니다. 
화물차 기사 김동수, 심상길 씨와 일반 승객 김성묵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해앴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이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배 안 에 남았다가 꼼짝없이 갇히게 된 학생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구명조끼를 찾아주었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친구를 찾으러 죽음이 닥쳐오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부모와
헤어져 울고 있는 다섯 살 아기를 달래며 보살피다가 끝내 살려냈습니다. 그 참담한 순간, 
공포에 떨던 '아이들'이 아기를 구해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요? 그 차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의 『세월호, 그날의 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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