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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기억

by 장돌뱅이. 2020. 4. 11.

고등학생이던 70년 대 중반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보았다.
종로통에 있던 단과반 학원을 다녀오는(아마 땡땡이 치고?) 길이었을 것이다. 수업을 팽개치고 
극장에 들어간 것은 그때까지 이름도 알지 못했던 하길종 감독이 아니라 원작자가 최인호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최인호는 소설과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친 『별들의 고향』의 작가로 유명했다.
최인호 팬이었던 친구 누나의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별들의 고향』을 비롯하여 『내 마음의 풍차』, 
『무서운 복수(複數)』 등을 빌려 읽은 뒤로 나도 최인호의 팬이 되었다. 
 바보들의 행진』도 영화 이전에 소설로 먼저 접했다.
대학에 들어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까지 최인호는 내가 정말 좋아하던 작가였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원작 소설과는 좀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가벼운 재미만 있던 소설(연작꽁트)에 비해 영화에는 당시의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묵직함이 있었다.
애잔한 배경 음악을 따라 마음 속으로 뭔가 슬프거나 억눌린 느낌이 살얼음 끼 듯 번져오기도 했다. 

다소 난해했던 영화의 부분을 이해하게 된 건 나도 한 명의 '바보'가 된 이후였다. 
영화 속 '병태나 영철이'처럼 평범한 일상을 '행진하며(?)' 지내는 중에, 
일테면 친구들과 걸핏하면 술판을 벌리며 막연히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코스프레를 하거나 
학교 노천극장의 계단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볼 때,
혹은 학교 앞 다방에서 애인을 기다릴 때, 
디제이가 틀어주는 『바보들의 행진』의 주제가를 들을 때, 
문득 문득 까까머리 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영화의 파편들에 대한  '퍼즐맞추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꼈던 난해함은 나의 소양 부족만이 아니라 영화 검열이라는 30분쯤의 물리적인 가위질 때문이었으며,
남은 화면에서조차도 영화가 정작 하고 싶은 말에서 멀리 에둘러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영화 속 함성 소리가 운동경기의 응원소리가 아니라 학생 데모의 그것이 일 수도 있고, 학생들이 학교와 거리를 달리며 
'한국적 스트리킹'이라는 엉터리 외침이 어쩌면 당시에 유신헌법이 내세우던 '한국적 민주주의'를 바꾼 말일 수 있으며, 
교수가 강의 시간에 칠판에 적은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사꾸라'로 고쳐쓰는 '병태'의 행동도 그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수회의 결정에 따라 무기한 휴강을 발표'하는 학교의 알림이나 '지금 내가 할 일은?'이라는 말만 쓴 학생회의 공고,
교내 방송을 시작한다며 점점 크게 '들립니까? 들립니까? 들립니까?'라고 악을 쓰는 이상스러운 스피커 소리가
실은 사람들에게 들어야 할 큰 진실이 있다는 암시라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다.  


얼마 전 EBS에서 한국영화특선으로  『바보들의 행진』을 방영했다.
요즈음의 관점으로는 연기도 대사도 어색하기 그지 없고 오골거리는 장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몇 장면들은 그 시절을 돌아보기에도 지금을 비추어보기에도 내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영화 주제가인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날이갈수록", "왜불러"를 영상과 함께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 누구도 국가권력과 사회규범의 이름으로 길거리에서 긴 머리에 가위를 들이대는 살풍경을 만들지 않고,
젊은 여성들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는 공공연한 '성추행'을 하지 않는다.
주말 북한강변으로 가는 기차에서 통키타를 건전풍속을 헤친다며 압수해 가지도 않는다.
방송이 금지된 노래는 사라지고 검열도 폐지되었다.

영화를 보며 다시 질문을 해보았다.
그 시절은 모두 아득한 '전설의 고향' 만큼 멀리 가버린 것일까? 
우리는 자유롭게 그 시절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
슬프고 암울했던 그 시절을 'GOOD OLD DAYS'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일까?
자본의 교묘함이거나 편견의 완고함이거나 더 위력적인 굴레에 우리는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몇 장면을 그 질문에 투사해 본다.

<왜 불러>
1974에 쓴 소설가 박완서의 
「머리털 좀 길러 봤자」라는 산문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다방에 자리가 없어 젊은이들 하고 합석을 했다. 청년들은 조용히 얘기를 나다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야아, 부럽다." "네 용기 알아 줘야겠다."
선망의 이유는 나중에 온 친구의 머리 때문이었다. 어찌 장발 단속을 교묘히 피했던지 꽤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장발풍이 정말 퇴폐 풍조인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설사 퇴폐 풍조라 치더라도 
장발을 강제로 단발로 만드는 걸로 퇴폐 풍조를 일소했다고 믿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애의 지혜만도 못한 것 같아 딱하다.
남자 머리가 짦아졌다 길어졌다, 넥타이 폭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여자 치마가 짧아졌다. 길어졌다, 유행이란 어차피 
길이가 있는 건 길어졌다 짧아졌다, 폭이 있는 건 넓어졌다 좁아졌다, 그 테두리 안에서 변하고 반복되는 게 아닐까. 
머리털이 길고 짧다는 외모가 결코 그 머리털의 주인공의 의식구조를 결정 짓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자기 머리도 자기가 마음대로 못하고 단속반의 가위에 의해 획일적으로 잘리는 사······
뭔가 우울하다. 젊은이들의 머리에 너무들 신경과민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좀 좋은가. 긴 머리도 있고, 중간 머리도 있고, 
짧은 머리도 있고, 짧은 치마도 있고, 긴 치마도 있고. 공부하느라, 연애에 정신이 팔려서, 이발료를 아끼려고, 멋있으려고, 
머리터럭쯤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었기로서니 거리를 활보하는 데 지장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이제 젊은이들에게 머리털을 그들의 것일 수 있도록 돌려 줬으면." 

특별히 머리를 기르지는 않았지만 대학생 시절 박완서의 이 글을 읽으면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청년들을 쫓아가던 경찰은 갑자기 부동자세로 상급자에게 거수경례를 붙인다.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닷!"
장발 단속만큼이나 경직된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읽게 된다.



<고래사냥> 



<군대 가는 날>
누군가 한국 영화에 남을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 
비록 입대하는 날 나는 이런 황홀한(?)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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