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았다.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해온 통상적인 형태로 깎은 것이 아니라 삭발을 한 것이다.
이발소에 가야 하는 적정 시간을 넘기고도 코로나를 핑계로 또 한참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장발이 되었다.
무엇을 기른다는 의미에는 애정이 포함되지만, 나의 머리는 그냥 놔두었으므로 자랐다는 표현이 맞다.
머리가 길어지니 털모자를 뒤집어쓴 듯 두툼한 느낌이 거북하고 앞을 가리며 흘러내리는 것도 거추장스러웠다.
무엇보다 머리를 감을 때가 가장 불편했다. 그러는 사이 머리는 자꾸 길어졌다.
어떨 때는 이대로 길게 길러 아예 꽁지머리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확 밀어버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별다른 기술도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아내에게 머리를 맡겼다.
아내는 못 믿겠다는 듯이 '바리깡'을 대기 전에 "정말 밀을 거야?"라고 여러 번 물었다.
삭발은 원래 슬럼프에 빠진 운동선수나 지도자가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결기를 세우거나
불만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 항의할 때,
아니면 고행의 출가자들이 계율을 지킨다는 자기 확인과 선언의 표시로 하는 것이지만
내게는 장발과 마찬가지로 삭발에도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 없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각해본 빡빡머리를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 궁색한 의미라면 의미겠다.
중고등학교 때와 군대 갈 때를 빼곤 성인이 되고 나서 빡빡머리는 처음이었다.
깎고 나니 우선 시원해서 좋았다. 머리 감는 것도 간단하고 시간도 빨라졌다.
다만 거울에 비친 모습과 손으로 머리를 만질 때의 느낌이 생소했을 뿐이다.
머리를 밀고 나서야 문득 한 가지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직장생활에서 물러난 지 오래라 누가 내 머리 형태를 가지고 시비 걸 일 없고
주위 사람들이야 '백수의 자유'라며 피식 웃고 말겠지만 손자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문제였다.
사전에 영상통화를 하며 면역 주사를(?) 놓았어도 직접 대면하면 크게 놀라지 않을까 부담이 되었다.
아내는 혹시 할아버지 따라 자기도 빡빡머리로 하겠다고 우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심스레 모자를 벗고 친구의 눈치를 살폈지만, 친구는 나의 머리에는 도통 무관심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와 노는 데만 열중했다.
한참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아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아버지 머리 어때?"
"머리? 짧아."
친구는 아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간단하게 답을 했다.
"???··· 짧은 게 어때?"
다소 어이가 없어진 아내가 재차 묻자 친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심상히 던졌다.
"나보다 멋있어."
아! 역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나의 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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