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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by 장돌뱅이. 2020. 8. 31.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어느 여름날 이 영화를 동네 공터에 들어선 가설(천막)극장에서 보았다.
누구랑 갔는지 기억에 없다. 아버지를 졸라 돈을 타내었다면 아마 누나들과 갔을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였을지도 모르겠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당시에 '국민영화'라 할 정도로 입소문이 자자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주인공이 껌을 팔다가 잡혀간 수용 시설에서 밤중에 탈출하는 장면만 어렴픗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기억에 선명한 건 영화 자체보다 극장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관객들의 울음소리다. 
훌쩍이는 소리에 아예 대성통곡까지 극장 안은 마치 초상집 같았다. 
울음소리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잦아드는 듯 하다간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어린 내게 그런 모습들은 매우 기괴해 보였다.

영화는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이윤복의 일기, 즉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기는 1963년 6월2일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64년 1월19일까지 쓴 것이다.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동생이 셋이었다. 
이윤복은 만 10세 국민학교 4학년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밤늦게까지 여동생 순나와 함께 껌을 팔아 국수를 사야 했다. 
수입이 없는 날은 밥을 구걸해야 했고 그도 안되면 온 식구가 굶은 채 누워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집은 비만 오면 물이 새고 가마니를 들추고 드나들어야 하는, 가축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는 상태였다.

저녁 열시쯤 되어 만미당 빵집 앞에서 순나를 만났습니다.
"순나야, 이제 고만 집에 가자."
"오빠, 한 시간만 더 팔다 가자,"
"순나야, 니 몇 통 남았노?"
"요고 두 통만 팔면 된다."
하면서 껌통을 나에게 보였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1963년 6월 5일 이윤복의 일기에서 -

어린 형제들의 고군분투가 천진난만하여 더 애처로운 일기였고 영화였다.
아마 그 시절 관객들의 '폭풍 눈물'은 같은 시대를 견디는 사람들의 동병상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일기에서 사회가 얼마나 아이들을 불행에 빠뜨리고 있고. 불행한 아동을 더욱 박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고, 한 소년이 어떻게 하여 곤궁의 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사회의 중압을 견디어 나갔는가를 
살피게 되고, 그리고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간스런 마음을 잃지 않는 동심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윤복이에서 우리는 동심의 승리, 즉 인간의 승리를 보는 것이다."
-이오덕선생님의 글 중에서 - 

디지털로 복원된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유튜브를 통해 아내와 다시 보았다.
아내 역시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 대신에 나처럼 관객들의 '처절한' 울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본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감상(感想)은 한마디로 끔찍한 가난이었다.

가난은  '한낫 남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명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잔인한 폭력이었다.
분수 밖의 것에 대한 탐욕을 부릴 시간도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동물적인 생존만이 절대적인 명제였지만
이윤복에게선고 따뜻한 '가난의 정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상처 받아도 우회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정직하게 맞서는 여리면서도 강한 의지가 보인다. 

그에 비해 엄청난 발전과 풍요를 이루고도 우리 시대는 망에  허기져 있는 것 같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기 위해서 집을 구하는 가치 전도를 현명한 투자로 해석하며 제로섬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없고 부자가 못된 사람만 있는 욕구불만이 도처에 들끓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세태와 욕망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낡은 화면의 흑백영화 속 이윤복을 보는 동안만 거기에 내 자신을 여과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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