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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너희는 기도할 때에

by 장돌뱅이. 2020. 8. 28.


"무엇인가 무서운 것이 밖에 있다."

평온한 마을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고 안개 속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해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것'을 피해 마트에 갇힌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각자의 생각을 내세운다.
괴물과 맞서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괴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상황을 주의 뜻이라며
선택 받은 자신을 따르면 사탄이 보낸 괴물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주장하는 광기의 종교인도 있다.
호주 영화 『미스트(MIST』의 줄거리다. 

지난 8개월 동안 우리는 공기 중에 존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떠밀려 잔뜩 움츠리며 지냈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미지의 바이러스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늘 잠복해왔던 '인간 바이러스'의 발현은 그 이상의 공포였다.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는 인간
고유의 권리이며 존중 받아야 한다. 종교인의 현실에 대한 발언은 
종교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정당한 실천 행위이다.

현실 속에서 그것이 정치적 수사(修辭)로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그 의견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다.
국민 다수가 바이러스의 공포와 실제적인 위협 속에 놓여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면 그것이 확산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이라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 더 종교적이며 더 종교인다운 태도 아닐까?
사랑과 자비, 그리고 평화가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아무 관련 없는 타인을 향할 수 있기에 종교는 위대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유용하기 때문에 존재해 왔다는 오래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적 집회나 종교적 예배를 '대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 집회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일까?
한두 살 먹은 유아들조차 마스크를 껴야 하고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막아보자는 요청이 
믿음을 모욕하고 폄훼하는 망발일까?
문을 닫는 식당과 자영업을 살리기 위한 시도가 '종교단체를 영업장이나 사업장'으로 취급하는 저급한 세속적 조치일까
상황이 종식될 때까지의 한시적인 조치를 인내하지 않는 것은 신일까? 교리일까? 인간일까?
다른 곳에는 적용할 수 없는 상식적 원리를 종교에는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 성서에 나온 예수님의 직설적인 가르침을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다른 신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마태오 6:5-6)


*위 사진 : 어린이대공원 산책 길에

영국의 존로크는 그의 저서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기독교의 계시를 받아들이면서도, 
이성과 모순될 경우 계시는 반드시 거부되어야 하며, 계시가 우리에게 주는 지식은 이성이 주는 지식만큼 확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계시의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 이성을 제거하는 것은 곧 계시와 이성의 빛 모두를 끄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별빛을 망원경으로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천주교 세례를 받았지만 확실히 난 '대면 계시'의 영적인 세계보다는 세속적이고 상식적인 현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대면) 예배나 기도가 마음의 평화는 줄 수 있겠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신의 무능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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