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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스리 친모이' 같은···

by 장돌뱅이. 2020. 8. 14.



아침부터 또 비가 퍼붓는다. 아내와 문을 열고 듣는 빗소리를 좋아하는데 이젠 지겹다.
차라리 가마솥 더위라도 쨍쨍한 해가 났으면 싶다.
코로나에 전례없는 긴 장마와 폭우가 더해진 가히 최악의 여름이다.
예전엔 장마가 7월 중하순에 끝나고 불볕 더위가 한 달쯤 지속되다가 
8월15일이면 한풀 꺾이면서
전국 모든 해수욕장이 폐장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8월15일이 되어야 겨우 장마가 끝난다고 한다.
늦더위가 조금 남아있겠지만 정점이 지났을 터이니 아마도 '장마 끝, 가을 시작'이 되지 않을까?

두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일상 속 활동 반경이 자꾸 줄어들었다.
코로나로 대외적인 활동은 중단되었고 동호회와 친구들의 모임도 뜸해졌다. 
아내와 자주 강변길 산책조차도 폭우로 불어난 강물 때문에 나들목부터 막혀 있다.
걸핏하면 퍼붓는 비 때문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까지 걷기도 만만찮다.
잠시 비가 주춤하는 틈새를 이용해서 아파트 주변을 맴도는 형태로 산책을 이어갈 수 있을 뿐이다.

미국 뉴욕에서는 52일간 3,100마일(4,960KM)을 달리는 스리 친모이(SRI CHINMOY)라는 대회가 열린다.
마라톤처럼 긴 코스를 직선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883미터의 순환 코스를 5,649번 도는 방식이다.
엄청난 육체적 고통과 함께 단순함과 반복의 지루함을 견디는 명상 수행의 한 방식이라고 한다. 
최소한의 반경을 맴돌며 지낸다는 점에서 요즈음 일상이 그 스리친모이 달리기를 닮아 있다.

아파트 주위를 맴돌다보니 여름꽃인 보랏빛 맥문동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맥문동의 꽃말은 '겸손과 인내'다.
올 여름엔 특히 필요한 덕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행의 내공이 덜 쌓인 나는 두툼한 구름장 덮힌 하늘을 보며 자주 투덜거리곤 한다.




인터넷( ZOOM, WEBEX 혹은 유튜브)을 이용한 강좌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코로나 이후이다.
나도 그림 그리기와 사진책 만들기, 역사박물관, 요리 강좌 등의 몇몇 강좌를 수강했고 지금도 수강하고 있는 중이다.
단순 반복의 일상에 변화를 주려는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만나는 온라인 강좌는 오프라인 강좌처럼 오고 가는 시간의 낭비없이 
어느 곳에서나 보고들을 수 있어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매스컴에서는 코로나 이후에는 사이버 공간의 일상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받는 기능에서만 장점을 가졌을 뿐, 사와 수강생, 그리고 수강생들끼리 
같은 관심사로 만났다는 친근감의 토대 위에서 관계와 배움을 확장하고 심화시키기에 온라인은 부족해 보였다.

인간은 이성의 존재라기보다는 감성 혹은 본능의 존재라고 한다. 
과학이 우리 시대의 문명을 이끄는 듯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에 기대고 싶은 감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결코 컴퓨터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온라인의 교육과 만남이 
미래의 대세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늙은 꼰대 티를 내는 것일까?

그래도 온라인 강좌가 '스리 친모이' 같은 지금의 일상에서 작은 숨구멍과 쉼터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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