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에 이어진 몇 차례 태풍이 지나고 하늘이 맑다.
모처럼의 햇살이 반가워 팔을 벌리고 받아보기도 했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엔 어느샌가 가을이 스며있다.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아내와 산책을 나섰다.
매일 다니는 길이 바뀐 날씨 탓인지 새롭게 다가왔다.
이제 어떤 것은 스러지고 또 어떤 것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아니 열매를 맺으며 스러지거나 스러지는 것으로 열매를 대신할 것이다.
인내하며 견디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허락되기를 욕심내며 아내와 기도해 보았다.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김종길,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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