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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풀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의 별

by 장돌뱅이. 2020. 8. 27.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약을 먹게 되었다. 영양제도 있고 치료(현상유지?)제도 있다.
일시적인 약도 있고 기약 없이 오래도록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병원도 자주 가게 된다. 아직 종합병원까지는 아니고 동네 병원 수준이지만 내과에 치과에 진료 부위가 다양하다.
50대까지는 좀처럼 없던 일이다. 병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약봉투를 선물처럼 받게 된다.

"우리 나이에 약은 식후에 먹는 디져트 같은 거야" 
술자리에서 서로 먹는 약을 확인하다 친구의 말에 웃은 적이 있다.

엇그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임의 회원들과 영상으로 월례 회의를 했다.
회의 끝 무렵 누군가 나빠진 시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비슷한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미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도 지난 봄 눈이 뻑뻑해서 안과에 잠시 다닌 적이 있다. 

"그래도 남은 우리의 생에서 지금이 가장 건강한 거야."
긍정적인 아내의 말을 '앞으로 점점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거잖아'로 공연히 뒤집는 개구장이 투정을 부려 보기도 한다.
옛글에 막대를 휘둘러 막아 보려고 해도 백발은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고 했던가.
육체적 퇴화는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다만
'풀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의 별'을 보는 여유만큼은 자주 아쉬워하며 늙어 갈 노릇이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 신경림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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