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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간결해서 특별한

by 장돌뱅이. 2020. 8. 23.



보리밥 한 공기
반찬은 세 가지
김치와 된장과 상추.

먼저 상추쌈을 먹는다.
상추 한 잎에
보리밥 한 숟갈
김치 한 조각-
이래서 김치 맛, 상추 맛을 즐긴다.

다음은 보리밥 한 숟갈 떠먹고
된장 한 젓갈 찍어 먹는다.
구수한 된장 맛이
구수한 보리밥으로 다시 더없는 된장 맛이 된다.

이제 보리밥이
3분의 1쯤 남았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보리밥만으로 먹는다.
보리밥만 떠서  
천천히 씹노라면
달고소한 보리밥 맛이
천하일품이다.

보리밥 한 공기로
세 가지 맛을 즐기는
이런 밥먹기는
내가 먹는 버릇이고
내가 깨달은 방법이고
내가 찾아낸 밥먹기다.
절대로 남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사람마다 버릇도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저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일이다.

다만 나는
김치를 좋아하고
된장 맛을 즐기고
상추가 먹고 싶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리밥의 참맛을
잊지 못해서
이렇게 먹는 것이다.
- 이오덕의 「보리밥 먹기」 -

이오덕선생님의 「보리밥 먹기」는 단순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맛집' 식당의 유명 음식이나 책이나 인터넷의 레시피로 만든 화려한 요리가 아닌, 
보리밥과 김치, 상추와 된장이란 간결한 음식을 특별하게 즐기는 모습에서 꼿꼿한 선비의 검박한 멋이 풍긴다. 
맛 아니면 건강에만 치우친 듯한 우리 시대 식문화를 돌아보게도 된다.

장마가 길었던 올 여름.
비가 부르는 건 부침이나 수제비만이 아니었다. 상추쌈도 있었다.
이오덕선생님의 단백함 경지를 따라가진 못하고 쌈장에 통조림 참치와 스크램블한 달걀를 곁들인 상추쌈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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