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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빈센트 반 고흐

by 장돌뱅이. 2020. 11. 23.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The Painter of Sunflowers)」  1888


영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 속에서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 는
"예술가는 유일해야 한다"고 했다. "진실성과 독창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그림을 외면했고 "그림으로 가족을 돌보겠다"던 그의 결심은 무기력해졌다.
수백(천)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것은 단 한 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헐값으로.
그는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가난에 시달리며 유일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생계를 의지해야 했다.
그의 숱한 기행(奇行)은 순결한 예술혼이 현실과 비벼대며 냈던 고통스런 마찰음이었을 것이다. 
총기 사고로 숨을 거둔 고흐의 품 속에서 나온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래. 나의 그림. 그것을 위해 나는 나의 목숨을 걸었고 이성까지도 반쯤 파묻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987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고흐의정물 : 15송이의 해바라기가 꽂힌 화병」(1889)
3,99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낙찰됐다.
뒤이어 「붓꽃」 (1889)은 5천3백만 달러에 팔려 「해바라기」의 기록을 넘어선다.
1990년에는 「가셰박사의 초상화」가 뉴욕 경매에서 8,250만 달러에 낙찰되어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가셰박사는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에 자신을 돌봐주던 정신과 의사라고한다.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이나 내 여윈 몸뚱어리의 품삯보다는 가치가 있다는 걸 세상이 알 날이 오겠지."라던
고흐의 소박하지만 굳건했던 믿음과 그가 견뎌야 했던 불우한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만화 같은일이 벌어진 것이다.
불운한 천재 예술가’에 대한 세상의 뒤늦은 깨달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황당할 정도다.
그림에 내제된 예술적 가치는 가격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리고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예술적 가치는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 것일까?
예술품의 시장도 시장인지라 비합리와 비이성이란 본질적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위에 언급한 「해바라기」는 일본 보험회사의 본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붓꽃」은 미국 LA의 게티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셰박사의 초상화」는 한 일본인이 사 간 이래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그 일본인이 죽으면서 그림을 자신과 함께 화장해 달라고 해괴한 유언을 남겼다는 소문만 남아 있다고 한다.


*「가셰박사의 초상화」

1990년 7월 29일자 《뉴욕타임즈》에는 익명의 광고 하나가 실렸다.

1백 년 전 오늘, 벤센트 반 고흐가 사망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  그런 작품을 그려냈던
그의 작업을 기억하며,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합니다.

"화가는 진실을 찾는데 집중해야하고, 미술상은 예술의 중요성은 돈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평가는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책임감을 느끼고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감상자는 화가가 작품을 그릴 때 기울이는 노력과 집중력에 버금가는 자세로 예술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누군가 광기와 발작은 고흐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라고 꼬집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과 삶에 대한 생각 그의 동생이자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에 남아있다.
몇 대목 만을 들여다보아도 그의 맑은 영혼을 알 수 있게 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옮김)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중에는 좋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사랑에 빠지면 태양이 더 환하게 비추고 모든 것이 새로운 매력을 갖고 다가온다.
깊은 사랑에 빠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난 사랑이 명확한 사고를 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랑할 때 더 분명하게 생각하고 이전보다 더 활동적이 된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물론 그 외양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 사랑은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

세상에는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모든 것을 잃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인다. 자연이 그 빛나는 모습을 드러내는 요즘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고, 그림은 마치 꿈속에서처럼 내게 다가오곤 한다······.
삶은 결국 이렇게 매혹적인 것이었다.


아내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의 그림을, 아니 그를 만나러 다녔다.  
특히 미국에서 아내와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는 
언제나 몇 점의 고흐가 걸려있었다.
그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야수파에서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후배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우리는 성급히 옆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그의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무르려 했다.
 
그림을 보는 소양도 노력도 부족하므로 기회가 있을 때 그냥 좀 더 오래 보는 방법만 가지기로 했던 것이다.


*「THE BEDROOM」 (fro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HOUSE AT AUVERS」  (from THE PHILIPS COLLECTION, 워싱턴 D.C)



*「SELF-PORTRAIT」  (fromTNATIONAL GALLERY OF ART, 워싱턴 D.C)



*「MULBERRY TREE」  (fromNORTON SIMON MUSEUM, 로스앤젤레스)



*「IRISES」  (from J. PAUL GETTY MUSEUM, 로스앤젤레스) - 위에 언급한 '5천3백만 달러'의 그림이다.



*「A WHEAT FIELD, CYPRESSES」  (fro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뉴욕)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올 봄 아내와 함께
네델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갔을 것이다.
그곳에서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라 소조(塑造)를 한 것 같다는 그의 힘찬 붓질의 두터운 질감을 오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못내 보고싶은 「감자를 먹는사람들」(1885)의 진품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흐는 평소에 잘 알던 농부 가족을 한 명씩 따로 마흔 번 이상 그리면서 인물들의 표정을 익혔다고 한다.



신경숙의 같은 이름의 단편소설에도 「감자를 먹는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단순한 그림이었어요. 그들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감자를 까먹고 있었죠.
모자를 쓴 남자도 있었고 , 팔소매를 약간 접은 여자도 있었습니다. 불빛 아래의 그 삶들은 거칠고 강한 선으로 묘사되고
있었습니다. 낡은 의복과 울뚝울뚝한 얼굴은 어두웠지만 선량해 보였습니다. 감자를 향해 내민 손은 노동에 바싹 야위었지요.
(···) 그들은 막 노동에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불을 켜놓은 걸 보면 밤이 안겠습니까? 불빛은 낡은 탁자를 온화하게도 비추고
있었습니다. 하루분의 노도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 것일까? 저녁식사가 저 몇 알의 감자일까?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무척
풍부했습니다. 태양 아래의 감자밭이 그들 얼굴 위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참에 억눌릴 만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눈빛과 손짓과 낡은 의복으로요. 어쩌면 나는 그들이 먹는 것이
알감자라는 것에 혹했는지도 모르지요. 기름에 튀겨서 칩을 만든 것도 아니고, 강판에 갈아서 감자전을 부친 것도 아니고,
마요네즈에 버무려 샐러드를 만든 것도 아니라는 점에 말이에요. 그들이 노동에 단련된 굵은 손으로 덥석 집어먹고 있는 게
그저 삶아 그릇에 내놓은 순수한 알감자라는 점에 말이에요.



*영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 포스터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루지 못한 꿈은 시간과 함께 아쉬움이 더욱 진해진다.
고흐의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으며 그의 나라에서 고흐를 만나는 날이 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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