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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트윈스터즈』

by 장돌뱅이. 2020. 11. 28.


만약 TV에서 쌍둥이 자매가 출생과 동시에 각각 다른 나라로 입양되어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 25년 간 살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자신과 닮은 상대방의 사진을 보고 연결이 된다는 내용으로 드라마를 시작한다면,
많은 시청자들이 "또 '출생의 비밀' 타령이네.  그리고 이런 우연은 너무 현실성이 없는 거 아니야?"라며 식상해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주 상상을 앞서 가는 '막장 드리마'다.
LA에 사는 사만다는 어느 날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받는다.
프랑스에 사는 아나이스가 유튜브에서 자신과 신기하게 똑같이 생긴 사만다를 발견하고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아만다 역시 아나이스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거 나잖아. 우리 쌍둥이인가?!"

그랬다. 그들은 쌍둥이 자매였다. 
그들은 최소한의 존재 증명의 정보도 없이 먼 나라로 보내진 것이다.

영화는 자매의 재회와 자신의 운명, 그리고 자신을 낳은 나라 한국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타리이다. 
아니 화해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말이 적절하겠다.  

아나이스는 자신의 생일을 입양 시 프랑스 공항에 도착한 날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전엔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행복하다면 더 좋게 만들려고 애쓰는게 실수일 수도 있다"며 사만다가 제안한 한국행을 주저한다.
영화 속 자매 중 한 명이 말했다.
"I'll never be ready for this."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그 깊고 어둡고 복잡한 감정을 누가 함부로 이해한다 말할 수 있으랴.


*영화 『트윈스터즈(TWINSTERS)』 홈페이지 중


오래 전 『차정희에 관하여(In the matter of Cha Jung Hee)』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참조 : https://jangdolbange.tistory.com/801 )
차정희는 8세 때인 1966년 미국인 부부에게 차정희라는 이름으로 입양되었다. 원래 이름은 강옥진이었다. 
입양 직전 차정희를 친부모가 찾아가자 시설에서 외모가 비슷한 강옥진을 차정희로 바꾸어  미국에 보낸 것이다.
1960년대 한 아이당 입양기관에서 양부모에게 130달러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일인당 GDP가 106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1950년대 전쟁고아를 구제하기 위한 임시적 조치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해외입양은 1980년대 최고조에 달하여
10년 동안 6만5511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었다. 특히 1985년(8,837명)과 1986년(8,680명)을 포함해,
1984년부터 1988년까지 5년 동안한 해 태어난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었다.    

1988년 미국의 월간지 프로그레시브에 따르면 입양 기관들은 입양 부모들로부터 아이 1명 당 5,000달러를 받았다.
그러니까 1985년의 경우 입양 관련하여 대략 4,400백만 달러의 돈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주한 미대사관에서 입양 비자 발급 담당 영사였던 로버트 애크만씨는 
한국에서는 입양이 비즈니스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86 아시안 게임, 88 하계 올림픽을 주최하며 대내외적으로 화려한 행보를
과시하면서도
 세계 최대의 '영아 수출국'이란 부끄러운 이름을 떨쳐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트윈스터즈』 홈페이지 중

요즈음은 어떨까 하여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국내입양 활성화 정책의 영향으로 2007년부터는 국내입양 아이가 해외입양 아이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2017입양으로 가정을 만난 보호대상 아이는 총 863명이며,
이 중 465(53.9%)이 국내로, 398(46.1%)은 해외로 입양되었다.
2018년엔 총 입양 아이 681명 중 국내입양된 378(55.5%), 해외입양303(44.5%)이었다.
우리 사회에 여전한 혈연중시 문화,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 입양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왜들 낳아서 왜들 버리는가?'
 내 기억이 맞다면 윤흥길의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그 질문을 입양아, 특히 해외입양아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왜들 낳아서 왜들 버리는가?'
한 개인에게 한정된 질문이 아니고 우리 모두를 향한 질책이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키워준 부모와 낳아준 부모, 그리고 입양 전 키워준 위탁모까지 얻었다며
입양 이전의 자신의 존재를 비로소 인정한 『트윈스터즈』 자매가 말했다.
"가족에 정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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