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아시안영화제가 샌디에고에서 열린다. 한국 영화도 몇 편씩 상영된다.
이곳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유일한 기회이다 보니 아내와 나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행사다.
출품된 영화 대부분이 메이저 제작사의 상업 영화가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나 다큐영화들이서 더욱 좋아한다.
한국에 있다고 해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인디스페이스'를 찾아가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영화들 아닌가.
올해는 『회복(RESILIENCE)』이나 『차정희에 관하여(IN THE MATTER OF CHA JUNG HEE)』 등의
한국의 해외 입양아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화가 많았다.
『차정희에 관하여』 는 엄격히 말하면 '차정희'라는 한국 이름의 미국인 DEANN BORSHAY LIEM 이 만든 미국 영화였다.
그녀는 8살이었던 1966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차정희는 그녀의 여권에 찍힌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원래 입양 예정이었던 차정희를 보낼 수 없게 된 한국의 입양기관이 비슷한 외모의 다른 아이를 차정희라고 속여서 보낸 것이다.
진짜 차정희는 입양 직전 보육시설을 찾아온 친부모들이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입양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기 보다는 입양 대금을 받기 위한 기만행위라는 심증이 간다.
자신의 입양 내력을 알게된 DEANN BORSHAY LIEM는 어쩌면 지금의 자신일 수도 있는 진짜 차정희를 찾아 한국으로 간다.
영화는 '운명적 뒤바뀜'이라는 주말 연속극식의 표현으로는 부족한 (차정희씨 아닌) 차정희씨 개인의 비극을 맞춰 과장하기보다
지난 시절 한국의 해외입양의 과정과 문제점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영아수출국'이란 우리 사회의 민낯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와 나를 안타깝고 부끄럽게 했다.
한국은 전쟁 직후에는 가난 때문에 해외 입양을 보냈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뒤에도 그에 걸맞은 사회보장체제를
확립하지 못한데다가, 미혼모와 미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마저 커서 '영아수출대국'이 되었다고 영화는 말했다.
거기에 우리의 편협한 혈통중심주의라는 전통도 가세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DEANN BORSHAY LIEM 씨
영화가 끝난 뒤 제작자와 대화 시간에 한 미국인이 차정희(DEANN BORSHAY LIEM)씨에게 물었다.
"한국은 아직도 해외입양을 많이 보내는지?"
차정희씨는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넘어서고 있다"고 대답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가운데서도 그나마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영화 『반두비』 중에서
『반두비』"라는 영화도 보았다. '반두비'는 방글라데시 말로 "친구"라고 한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한 일원이 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와 한국 여고생이 만들어가는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젊은 그들의 만남이 우리 사회의 숱한 제도적 모순과 주위 사람들의 편견이란 높고 험난한 벽을 넘어서야
가능한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원버스임에도 텅 비어있는 이주노동자의 옆 좌석은 서서 갈지언정 검은 피부의 이주노동자와 함께
앉고 싶지 않다는 우리 사회의 완고한 거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솔직히 그것이 영화 속 '픽션'만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주변에 앉은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늬들은 우리보다 더한 인종 차별을 저질러오지 않았느냐?'며 고개 쳐들고 당당하기에는
우리의 허물도 만만찮아 보였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부끄러움을 찾아내고 드러내서 인정하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출발선에 설 수 있지 않을까?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감정이므로.
중요한 것은 외국인들의 눈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직과 반성이다.
(글 작성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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