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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세월은 가고 오는 것

by 장돌뱅이. 2013. 7. 23.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 그것도 저학년이었을 때
남자 아이들은 여자들과 손을 잡는 것을 싫어했다.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여자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표현에 소극적이었다면
남자 아이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그 때문에 소풍날
수건돌리기를 하기 위해 손을 잡고 동그란 원을 만들려고 하면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이 늘 문제가 되었다. 서로 손을 잡지 않으려고 해서 사이가 뜨기 때문이었다.
고집스런 아이들은 선생님이 중재에 나서도 끝내 손을 잡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중고등 학생이 되면서는 가까운 여학교의 또래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등하교 길 버스에서 자주 보게 되는 이름도 모르는 여학생 때문에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걸 느끼면서 당황스러워지기도 한다.
대학생 시절 데이트를 하면서 아내와 처음 손을 잡아본 날의 짜릿함은
무척 강렬한 것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시나브로
시나브로 그렇게 되었던 같다. 신이 인간의 마음 속에 심어준 본능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유아용품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아마 갱년기를 지나면서 생긴 증상인 것 같다. 앙증맞은 신발, 귀여운 그림이
들어간 턱받이, 흰 원피스, 동그란 모자 등등 인형에 입혀도 될 만한 그 작은
것들을 보면 귀여워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못내 몸서리를 친다. 당장에 쓸 용도가
있는 것이 아닌 데도 하나 사다 둘까? 하고 아까워하기도 한다. 아내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눈에도 그것들은 예쁘기 그지없다. 
“아마 우리가 손자 볼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봐.”
농담처럼 말을 하며 우리는 낄낄거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에 맞은 감정이 새롭게 생겨나게 되어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그런 감정을 가장 확실하게 달래 줄 수 있는 딸아이는 아직 준비도
안 되어 있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서둘 것은 없겠다.
그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기에.

세월은 우리가 짐가방을 포기하고 뒤쫓았어도 놓쳐버린,
혹은 서둘러 짐만 올려놓았는데 떠나버린 일방통행의 버스만은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싣고 늘 다시
오는 순환버스이기도 하다.

아내와 휴일 오후를 보내러 외출을 했다가 우연히 디즈니 상품점을 보게 되었다.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다시 또 이런저런 디즈니의 인형과 옷가지를 만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여느 때처럼 빈손으로 가게를 나오며 문득 박인환의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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