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딸아이가 왔다

by 장돌뱅이. 2013. 7. 23.

 



딸아이가 왔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라 꿈처럼 느껴졌다.
딸아이의 직장이 9일의 추석 연휴를 확정한 것이 연휴 시작 불과 일주일 전.
연락을 받고 한국의 여행사에 바로 문의를 하였지만 ‘황금연휴’답게 미국으로
오는 항공편 좌석은 모두 만석이었다. 어린 아이 떼를 쓰듯 평소 안면이 좀 있는
(있다고 생각하는) 여행사 사장님에게 염치 불구하고 졸라댔다.
“이산가족의 상봉을 위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마음씨 좋은 사장은 나의 억지에 난처한 웃음만 흘릴 뿐 자신이 없어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한항공의 고객 센터에도 메일을 보내보았다.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좌석이 없다’는. 연휴 일자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겉으로는 여행사를 졸라대는 횟수와 강도를 높여갔지만
점차 포기 쪽으로 마음을 두었다. 딸아이에게도 상황이 이러하니 과도한 기대를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행사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능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오던 날.
샌디에고에서 엘에이 공항까지 두 시간여 운전은 가볍고 미끈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며칠 전 서비스 센터에서 차를 점검하고 오일까지
교체해두기도 했다. 조바심치며 기다린 끝에 드디어 딸아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막상 만나고 나니 아침에 출근을 했다가 저녁에 퇴근해서 만난 것처럼 헤어져
있던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처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딸아이의 수다를 들으며 차를 몰았다.  

짐을 풀고 와인을 마시며 딸아이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이미 3년이나 된 성년의 딸아이는 아내와 나를 만나면
여전히 어린아이가 된다. 나로서는 오랫동안 목말랐던 그녀의 수다이고
재롱(?)이었다.

샌디에고에 머무르는 동안 딸아이는 낮 동안은 아내와 함께 보내고
나의 퇴근 후에는 집 근처 아울렛에서 선물도 사며 시간을 보냈다.
짧은 만남의 며칠 뒤 딸아이는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위 사진 : 딸아이 귀국날의 엘에이 공항

샌디에고에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일식집이 있다.
주로 스시를 먹으러 가는데 이번에 딸아이의 입맛이 이 음식점에 ’꽂혔다‘.
그 때문에 이곳을 연달아 가게 되었다. 입에 맞는 음식이면 질리지 않고
연속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딸아이의 특기이기도 하다.

 

 

 



딸아이가 귀국한 지 한 달쯤 지난 뒤인 며칠 전이 결혼기념일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내와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바꾸게 되었다.
아내의 말 때문이었다.
“그곳에 가면 우리 딸이 생각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눈가에 딸아이를 보내고 엘에이 공항을
나올 때처럼 작은 보석이 반짝였다.

(2010.11)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 21일 일요일 하루  (0) 2013.07.23
SAN DIEGO ASIAN FILM FESTIVAL  (0) 2013.07.23
세월은 가고 오는 것  (0) 2013.07.23
짐머맨 재판  (0) 2013.07.21
장마의 기억  (0) 2013.07.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