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하이킹을 가려던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아내의 몸 상태가 갑자기 찌뿌둥해진 탓이다.
이틀 전부터 까닭 없이 기운이 없고 어지럽던 증상이 좀 심해진 듯 했다.
책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며 뒹구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내친 김에 기운이 떨어진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한동안 음식 만들기에 재미를 붙여 시도를 하다가
몇 가지 음식에 자신이(?) 붙은 뒤로는 그것만 반복하여 만들어온 터라,
이번엔 아내의 입맛도 돋우고 기분도 전환시키기 위해 새로운 음식을 골라 보았다.
아침엔 아몬드와 잣, 그리고 호두 등과 물을 섞고 믹서기에 갈아
흰 밥과 함께 끓여 ‘견과(堅果)류 짬뽕’죽을 만들었다.
고소한 맛 삼총사로 만드니 합친 맛도 고소했다.
아몬드는 사온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잣은 아내가 고깔을 이미 떼어놓았으니 역시 물로 씻어 그대로 사용했고.
다만 호두는 식초를 넣은 물에 삶아 속껍질을 발라내야 했다.
주름진 호두 살 사이에 붙은 껍질을 이쑤시개로 살살 파내야 하니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
인내 한계치를 오르내리며 좀이 쑤셨다. 어떻게 후다닥 해치울 지름길의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꼼꼼해져야 하는 일이다.
음식을 만들 때마다 부수적으로? 아니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이런 잡일.
따지고 보면 잡일이 아니라 그것이 제일 큰일이다.
음식을 만들고 난 뒤의 설거지도 그렇고.
이제까지 내가 음식을 만든다고 부산을 피울 때마다
매번 아내가 그런 일을 묵묵히 해주었다.
점심은 두부고추장 조림으로 했다.
기름에 노랗게 지져낸 두부에 이런저런 재료로 양념을 한
고추장을 넣고 자작자작 졸여내는 것.
끓는 국물이 내는 음율이 자못 경쾌했다.
늘 그렇 듯 이번에도 아내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것으로
맛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해주었다.
해가 지고 노을이 번지는 시각에 맞춰 저녁을 차렸다.
처음 만들어보는 안심스테이크.
인터넷을 뒤져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조리법을 모았다.
안심 덩어리를 달군 후라이팬에 초벌로 굽고 오븐에서 2차로 구웠다.
소스를 끓이고 야채를 볶았다.
밥은 마늘향이 배라고 함께 볶았으나 기술 미달로 마늘이 좀 타고 말았다.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차린 저녁상.
와인도 한 병 곁들이니 일류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그럴싸한 분위기가 되었다.
프라임 등급의 안심은 더 없이 부드러웠다.
창밖의 노을이 화려하지 않았으나 넉넉하고 푸근한 저녁이었다.
기분 때문인지 아내는 몸 상태가 한결 가뿐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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