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미국은 짐머맨 재판 결과의 여파로 시끌벅적하다.
작년 2월26일 동네 자율 방범대원이었던 히스패닉계 백인인 조지 짐머맨은 플로리다 샌퍼드 시에서 흑인 청소년(당시 17세) 트레이본 마틴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왔다. CNN에서 매일 이 재판을 생중계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난 13일 6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짐머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무죄로 판결했다.
당시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서 아버지의 애인 집으로 향하던 트레이본은 그를 수상히 여겨 추적하던 짐머맨과 다툼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짐머맨의 총에 의해 사살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짐머맨의 등에 잔디가 묻어 있고 코피가 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짐머맨의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그를 구속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주는 ‘정당방위’ (STAND YOUR GROUND법)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주라고 한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트레이본이 비무장 상태였고 총성이 울린 후 나가보니 짐머맨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트레이본의 등위에 올라타고 있었다는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짐머맨의 정당방위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었다.
짐머맨의 즉각적인 체포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오바마 대통령까지도 “나에게도 아들이 있었다면 숨진 트레이본가 같았을 것”이라며 흑인에 대한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적 선입견에 대한 성토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침내 검찰은 ‘짐머맨이 마치 경찰인 것처럼 행동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비무장이었던 트레이본에게 총격을 가했다’며 2급살인 혐의로 기소를 하였다. 이번 무죄 평결로 미 전역은 다시 시위로 들썩이고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과격한 양상을 띄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배심원 6명 중에 흑인은 한 명도 없었던 모양이다.
흑인 단체들은 ‘트레이본을 위한 정의’라는 이름의 시위행진을 토요일인 20일 LA와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전국 10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늘(이곳 시간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백악관브리핑에서 사태 진정을 위한 다소 교과서적인 말에 더하여 “트레이본 마틴은 35년 전의 나였을 수도 있었다(Trayvon Martin could have been me 35 years ago.)”는 등의 비판을 덧붙여 오히려 논쟁을 격화시켰다.
최근 10년 사이 미국의 정당방위 살인은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2000년 176건에서 2010년 326건으로 증가한 것이다. 살인자와 사망자의 인종이 다를 경우 전체 살인사건에서는 백인 희생자가 많았지만 정당방위 살인사건에서는 흑인 사망자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증명하는 직접적인 근거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단초는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평화는 긴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된 상태”라고 했던가? 법과 제도는 '정의'의 결론을 이끌냈다고 했지만 그로 인해 긴장이 해소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증폭되는 미국의 현실이 매우 복잡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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