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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장마의 기억

by 장돌뱅이. 2013. 7. 18.

*위 사진 : 월간지 <창조> 72년 9월 호 중에서

장마철마다 서울은 수도(首都) 아닌 '수도(水都)'가 되곤 했다.
매년 한두 번씩 중랑천 물이 넘쳤다. 아버지와 청량리를 다녀올 때면 버스 창문 너머로 거센 흙탕물이 다리 교각을 휘감으며 위압적으로 갈기를 세우곤 했다. 천변 방죽을 따라 다닥다닥 들어선 검은색 루핑의 집들이 여차하면 물길에 휘말릴 듯 위태롭게 보였다. 가재도구들이 숨바꼭질하듯 물속에 잠겼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며 빠른 속도로 떠내려 갈 때도 있었다.

그럴 즈음이면 동네 친구들 사이에선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떠돌곤 했다.
돼지 따위의 가축들이 산 채로 허우적거리며 휩쓸려 갔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튼튼하게 꼰 새끼줄로 고리를 만들어 영화 속 카우보이처럼 그 돼지를 건져냈다고도 했다.

무슨 청승이었을까? 한번은 동네 개구쟁이들이 그 물난리를 구경하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집들이 기둥째 뽑혀 떠내려간다는 소문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억수같이 퍼붓는 빗길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도착한 중랑천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바다로 변해있었다. 육중한 다리 기둥을 거의 삼킨 강물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공룡처럼 두렵고 공포스러우면서도 흥미진진했다.

비록 소문처럼 살아 울부짖으며 떠내려가는 돼지는 보지 못하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돌아오는 길 중간쯤에서 뒤늦게 소식을 듣고 자전거로 뒤쫓아온 저마다의 부모에게 젖은 등짝을 쩍 소리가 나게 얻어맞아야 했지만. 그럴 즈음이면 우리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은 장맛비로 피해를 당한 수재민들을 위해 비워지기 시작했다.
철부지였던 나와 친구들은 어른들의 걱정과 안타까움, 고달픔 따윈 안중에 없었다.
다른 반과 합반으로 수업을 받아야 하는 비좁음조차 불편하기는커녕 즐거웠다.
그저 학교 전체가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긴장되고 부산한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 좋았다고나 할까.

그 수재민 중에는 같은 반 친구들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바로 윗층의 교실로 들어가는 녀석들의 간단한 하굣길이 마냥 신기했다.
죽죽 내리는 빗속을 한참 걸어가야 하는 나의 처지에 비해 한결 기능적으로(?) 보였다.

한 번은 친구의 '새 집'을 방문해 보았다.
어른스런 위로의 마음은 있을 리 없고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책걸상들을 모두 꺼내 복도에 쌓아 놓은 탓에 널찍해진 교실 바닥엔 이불이 깔려있었다.
이곳저곳에 빨래들이 잔치집 차일처럼 걸려 있었고 드나드는 사람들로 마치 교실은 잔칫집 마당 같아 보였다. 두런두런하는 어른들의 목소리사이로 무엇 때문인지 어린애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 한 쪽에서 친구는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고 했다. 미국의 지원품으로 만들어진다는 옥수수빵은 그런 처지의 친구들에게 우선 배급되었다. 나는 녀석의 그런 생활이 재미있어 보여 진심으로 부러웠다. 급기야는 그 마음을 담아두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
“야아! 너 정말 좋겠다야!”
그때 친구의 부모님이 그 자리에 없었던 모양이다.
또다시 등짝을 맞고 내쫓기지 않은 것을 보면.

‘영광이는요. 집이 물에 잠겨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어요.’
‘아녜요. 선생님. 운동장에 영광이네 식구들이 와서 살아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우린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사는
영광이를 위하여 찬송가를 꼬박꼬박 불러 주었다.
‘하늘 높은 곳에는 영광, 땅 위에서는 평화.’
용강초등학교 운동장에 수재민 텐트가 꽉 차 들어와
발디딜 땅이 운동회날 만국기 흩날리던 때처럼 한뼘도 없어 보였고
바람에 나부껴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던 텐트들, 그 밥짓던 냄비들이
내 눈을 통해 내 뱃속으로 꽉 차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장마가 저질러 논 그 참상을 가슴 속에 품고 지냈는지
나는 밤마다 잠자리가 축축했다
한강 철교 위로 성냥갑처럼 묶여져 지나가는 기차들이
동화책 그림처럼 신기했다 물살은 금방이라도 내 발 바로 밑을 어지러이 떠내려가고
영광이는 제 입보다도 훨씬 큰 미제 군용 스푼으로 억척스레 냄비밥을 퍼 먹었다
나는 영광이가
미제 군용 스푼보다는 더 위대해 보였다.

-김정환의 시, 「그 해의 장마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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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은 2010년 7월 16일이다.
한국에 다니러 간 아내가 전화로 장맛비가 대단하다고 알려준다.
부디 큰일 없이 지나가기를.

폭우 장마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학교 운동장으로 교실로 피난을 왔던 아이들은 어디서 나처럼 초로의 나이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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