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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작고 작은 이 세상

by 장돌뱅이. 2020. 11. 18.


2011년 12월
뉴질랜드를 여행하다가 위험천만한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인가가 없는 외딴 도로에서였다. 그때 뉴질랜드 사람들로부터 두 번의 친절한 도움을 받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당시의 여행기로 대신한다.
( https://jangdolbange.tistory.com/911 )

그 일로 나는 두 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에서 말짱하게 살아남은 건 신이 베풀어준 행운 덕분이었으므로 
남은 삶은 그 분의 뜻에 합당하게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행복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할 수 있겠다. 
가히 '거룩한'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다짐의 강도는 물에 풀린 물감처럼 나날이 희미해져가고 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옹졸한 불평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며 운전하는 것 같아 함부로 끼어들거나 불빛을 번쩍거리는 차에 욕설을 해대고,
이렇게 열심히 마스크를 끼고 불필요한 모임도 삼가고 있는데 왜 코로나는 사라지지 않는거냐고 억울해 한다.
반응 없는 상대방에게 나만 일방적으로 베풀며 사는 것 같아 서둘러 서러워하고 괘씸해 할 때도 있다.
세상은 여전히 불만스럽고 삶 또한 자주 구질구질하다.

그래도 뉴질랜드에서 비롯된 다짐은 유효하다.
생각할 때마다 느슨해진 다짐을 부끄러움게 자각하게 하고 다시 마음을 추스리게 하는 힘이 된다.
늘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고 재의 삶에 위로를 준다. 
"그때 그런 결심을 했었잖아!"
"마주 오는 차와 부딪쳐 생길 수 있었던 끔찍함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잖아!"

또 다른 한 가지 다짐은 주변의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하자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받은 친절을 나도 누구에겐가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더군다나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해외에서 10년 가까이 주재를 했고, 
33년 넘게 해외영업이라는 업무를 하며 지냈으므로 외국인들에게 받은 도움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작년 가을부터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50+가 모인 한 커뮤니티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매주 토요일에 마포의 한 장소에 모여 수업을 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대면수업이 위축되면서 나는 현재 영상수업만을 하고 있다.
다른 회원들은 학생들이 있는 현장에 찾아가 출장수업을 병행을 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의 만남이 고달픈 이국생활을 보내는 그들과 잠시라도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을 가져본다. 

세상은 넓다고 하지만 손을 잡으면 작아지고 가까워진다.
우리는 '작고 작은 이 세상'을 함께 사는 '작고 작은' 존재들이다.
학창 시절 불렀던 노래를 떠올려 본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험한 길 가는 두려운 마음
둘이 걸으면 기쁨이 넘쳐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위 영상은 최근 "50+커뮤니티 ON스테이지"라는 행사에 제출용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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