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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PCH를 따라 4. - 산타바바라 SANTA BABARA

by 장돌뱅이. 2012. 4. 26.

늦은 출발과 솔뱅에서의 지체로 계획했던 솔뱅 주변의 와이너리WINERY
방문은 생략을 해야 했다. 원래는 적당한 와인을 한 병 사서
저녁에 아내와 나눌 생각이었는데.
그렇 듯 준비와 실행에서 여행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은 늘 욕심과 갈등을 빚는다.
사는 일과 비슷하다.

솔뱅에서 산타바바라의 숙소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올 때와 같은 101번 도로를 타고 돌아가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 산을 타고 넘는
154번 도로로 방향을 잡았는데 내리막길에 경찰차들이 요소요소마다 포진을 하고
감시를 하는 탓에 도통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위 사진 : 154번 도로변에 있는 호수

미국의(캘리포니아의?) 교통 범칙금은 굉장히 강력하다.
어떤 사람은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를 ‘FINE’ STATE 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다른 주의 사정은 내가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위반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속도위반에 400불 가까운 돈을 물었다고
억울해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다.
특히나 근래에 들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전과 보다 단속이 강력해진 것 같다.

아내만 아니었으면 나도 이번에 그들의 그물망에 걸렸을 것이다.
편도 1차선임에도 차 뒤꽁무니에 가깝게 따라붙는 성질 급한 녀석이 있어
신경이 쓰였는데, 아내가 그냥 갓길로 비켜주라고 했다.
나도 이미 규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고 있어서 그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을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왠지 좀 억울한 마음으로 산길의 좁은 갓길에 차를 붙이며 녀석에게
길을 양보했는데, 잠깐 사이에 꼬부랑길을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던 녀석이
다음 모퉁이에서 경찰에게 잡혀 있었다.
녀석이 그렇게 바짝 들이대지만 않았다면 경찰차의 번쩍이는
불빛 세례를 받은 사람은 분명 나였을 것이다.
이럴 때 살맛이 난다면 내가 너무 놀부심보를 가진 것일까?
“역시 조강지처의 말은 잘 들어야 돼.”
기분이 좋아서 한마디를 덧붙였다가 아내에게 옆구리를 꼬집히고 말았다.  

산타바바라의 숙소는 WHITE JASMINE INN (www.WhiteJasmineInnSantaBarbara.com)
이었다. 시내 중심가 쪽 ‘목욕탕’ (BATH STREET) 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거리에 있었다.
우리의 여행 시기가 미국독립기념일 연휴 때라 방값들이 폭등하고 민박집 홈페이지마다
대부분  ‘만원사례’를 내건 탓에 동남아 특급호텔의 값을 치르고 그나마 가까스로 방을
잡은 곳이었다.

체인점의 천국인 미국에서 일단 길을 떠나고 보면 어느 곳에서나 RAMADA나
BEST WESTERN 같은 신뢰할만한 숙박 체인점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비록 하룻밤이라도(아니 어쩌면 하룻밤이기에) 너무 규격화된
‘맥도날드’ 같은 숙소에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아내와 단 둘의 단출한 여행에,
대단한 시설을 갖춘 숙소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숙소에서 휴식의 일정을 갖고 있지 않은 여행이었기에
다소 과도해 보이는 숙박료에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실행에 옮기에 된 곳이었다.

숙소의 마당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우리가 내린 그 결정에 만족했다.
WHITE JASMIN은 정원에 꽃이 가득한, 아담한 회색의 1층의 집이었다.
반바지 차림의 편한 복장을 한 관리 매니저인 JOHN는 다소 투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태도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 방은 본관 옆으로 별도 출입구를 가진 방이었다.
키 작은 아내의 허리를 넘을 저도의  높은 침대를 비롯하여
옛날 스타일의 실내장식을 한 방은 깨끗했고 세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가정집 같은 따뜻함과 정겨움이 스며 있는 곳이었다.
방문 옆에 별도의 자쿠지도 있었다.
길 건너 편 집에도 등급이 낮은 방이 몇 개 더 있다는 JOHN의 말로 보아
사세 확장이라도 한 듯 민박집 사업이 그리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랬다면 그것은 이곳의 정성스런 관리 탓일 거라고 아내와 나는 생각했다.


*위 사진 : 산타바바라의 번화가 STATE STREET 에서

여행지에서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가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여
개운해진 몸으로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일이다. 때가 마침 저녁이어서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불을 밝히는 상점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산타바바라에서의 저녁이 그랬다.

우리는 차를 세워두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STATE STREET로 나갔다.
고층의 콘크리트 건물 대신에 키 낮은 목재 건물이 줄지어선 거리는 무엇보다
눈을 편하게 했다. 상점과 식당과 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산타바바라 최고의 번화가답게
주말을 즐기러 나온 인파들로 거리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축제의 현장으로 보이는 여행자의 기분이 더해져서 우리는
덩달아 들뜬 마음이 되어 바닷가로 향해 뻗은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위 사진 : SANTA BARBARA SHELLFISH CO. 에서의 저녁.
             각종 매체에 소개된 식당이었으나 
그다지 기대에는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바닷가 부두의 식당에서 해산물로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곳곳에 불빛들이 살아나며
산들바람이 스치는 바닷물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나와 먼 길을 떠나온
긴 하루였지만 감각적으로는 짧게 지나간 하루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아내와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이 그랬던 것 같다.
그 반대의 경우는 잔인한 상상이다.
한 평생같은 하루는 불행하거나
최소한 너무 지루하지 않겠는가.

일인당 25센트를 하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내와 맥주 한 캔씩을 마시는 것으로
긴, 그러나 짧은
또 하루의 행복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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