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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PCH를 따라 5. - 산타바바라 2.

by 장돌뱅이. 2012. 4. 26.

아침 9시.
예약 시 약속했던 시간에 JOHN은 방으로 직접 음식을 날라 왔다.
우리는 방 바깥쪽에 자리를 마련했다.

따뜻한 접시에 담긴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 그리고 딸기와 요구르트가 달콤한 샐러드와 신선한 주스.
“아침에 맡는 냄새 속에는 행복이 있다”고 하던가.
산타바바라의, 화이트자스민의 아침에 아내와 내가 식사시간 내내 달콤한 향내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삶은 녹녹치 않은 것이지만 늘 주눅 들어 살 필요가 없는 것은 세상엔 여전히 행복해야할 이유기 많기 때문이다.
간단하면서도 정성이 스민 상차림만으로, 혹은 숙소의 정원으로 소리도 없이 가득 쏟아져내리며
꽃송이들을 활짝 피어나게 하는 아침햇살만으로도.

이 날은 ‘레드타일워킹투어’(RED TILE WALKING TOUR)를 하기로 했다.
‘레드타일’이란 말은 산타바바라의 역사, 문화적 명소들의 붉은색 기와를 지칭하는 말이며,
투어는 산타바바라 카운티 법원, 도서관, 예술박물관 등
열 몇 곳의 건물을 두세 시간에 걸쳐 도보로 돌아보는 것이다.


*위 사진 : 레드 타일 투어 약도('차 없는 산타바바라'에서 인용)

따라서 필요한 것은 두 다리와 시간뿐이다. 굉장한 건물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산타바바라를 방문한다면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코스이다.
관련 약도와 자료는 ‘차 없는 산타바바라’( http://www.santabarbaracarfree.org )
에서 얻을 수 있다.

법원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아침 산타바바라는 아름다웠다.
시내에서 이어져 멀리 산언덕까지 타고 올라가 들어선 집들이 그림 같았다.
도보여행을 다 마치지 않아도 캘리포니아 최고의 부촌 중의 하나라는 말에 긍정을 하게 되었다. 

   아름다웠고 눈이 부셨으며 부러웠고 벅찼다. (...)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가슴 아리도록 질투가 났다. ‘아름답다’는 단어의 한계를 느끼지만 더
   이상 적절하고 솔직한 표현을 못하겠다. 너무 아름답다. 천국이고 낙원이다.
   모든 사념과 잡념이 그 앞에서 무색해진다. 
                                                         -김영주의 『캘리포니아』중에서 -

미국에는 SANTA 라는 말이 들어간 지명이 참 많다.
산타바바라에 산타모니카, 산타페이, 산타마리아 등등. 산타가 ‘성스러운’, ‘순수한’, ‘맑고 깨끗한’ 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산타바바라는 그 단어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보였다.

길거리 곳곳에서 눈에 자주 띄는 노숙자들은 산타바바라의 밝은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나 미국이나 함부로 인상 찌푸릴 수 없는 시대의 한 모습으로,
너무 무겁게는 아니더라도, 일단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이곳이 18세기 초까지는 추마시(CHUMASH) 부족이 살던 곳이고, 1850년까지는 멕시코의 땅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도보여행이 끝나고 커피점  NORTHSTAR에서 커피를 마시며 뻐근해진 다리를 풀었다.
길거리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멀리 떠나와 만든 그 한가로움이 좋아
우리는 시간을 잊은 사람들처럼 해찰을 부렸다.

인도에 접해 열린 공간을 가진 이태리식당 ALDO'S에서의 점심식사도 그런 느긋한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위 사진 : 해안을 따라 이어진 PCH

식사를 마치고는 귀가 길이었다.
우선 벤츄라 VENTURA 를 거쳐 말리부 MALIBU 까지 가급적 PCH를 이용하여 내려가기로 했다.
산 허리를 에둘러 뻗어나간 길 오른쪽으로 태평양의 수평선은
장관이었고 바다에 가까이 주차를 시킨
RV (RECREATION VEHICLE) 차량의 행렬도
그랬다.
언젠가 미국 근무를 마치면 나도 저 차를 빌려 아내와 같은 장소에 있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위 사진 : PCH를 따라 이어진 RV 차량들의 행렬

7월의 강렬한 태양 속에 크고 작은 해변들엔 사람과 차량들로 넘쳐났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는 곳곳에 서핑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말리부로 다가가면서 해안 쪽으로 예사롭지 않은 호화주택들이 즐비했다.
1930년대부터 영화계 스타와 뮤지션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저택들이라고 한다.
저 집들 속에서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더불어 세상은 또 어떻게 비춰질까?
해안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선 집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언제나 강풍이 불어 요트타기에 적합하다는 쥬마비치 ZUMA BEACH의 남쪽 5KM에 있는 말리부 비치는
원래 우말리부 UMALIBU 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그 뜻은 "그곳에서 하루 종일 넘쳐나는 시끄러운 소음" 이라는 뜻 이라고 한다.
위에 글을 위용한 김영주는 같은 여행기에서 “말리부의 서핑과 음악소리 그리고 바다의 물결 소리가 시끄러운 소음의 주인공” 이라고
했다.
아무튼 말리부는 수많은 인파와 차량들로 주차 공간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2주 뒤에 캠브리아 CAMBRIA를 다녀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산타바바라에 들렸다.  
첫 번째 여행에서 가보지 못한 MISSION SANTA BARBARA를 보고, 운전에 따른 휴식과 식사, 그리고 차량 연료 보충을 위해서였다.


*위 사진 : MISSION SANTTA BARBARA

MISSION SANTTA BARBARA는 1820년에 완공된 스페인양식의 건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입장이 불가한 '장날'이어서 바깥쪽만 맴돌고 나왔다.


*위 사진 : 아리가토 스시의 내외부.

이 날 식사를 한 일식당 아리가토 스시 ARIGATO SUSHI는 음식의 맛과 질에서 만족스러운 식당이었다.
인터넷에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탓에
오후 다섯 시 반에 문을 열자마자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자리가 만석이 되었다.
우리 뒤를 이어 산타바바라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었다.

산타바바라. 작고 예쁜 도시였다.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아내와 늘 다시오자곤 말하곤 한다.
우리는 산타바바라를 떠나면서도 같은 다짐을 했다.

끝없이 넓은 미국 돌아보는 여행길에 -그것도 겨우 주말과 휴일에만 가능한 월급쟁이의 여행길에,
그 다짐을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을 줄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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