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PCH를 따라 7. - 시쿼이아 & 킹즈캐년 국립공원2

by 장돌뱅이. 2012. 4. 26.

길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한 채로 산허리를 돌고 또 돌며 고도를 높여갔다.
한 산모퉁이 전망 포인트에 서자 우리가 올라온 꼬부랑길이 저 아래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내려다 보였다.
해는 이제 제법 하늘로 솟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산속으로 파고들었고 숲은 조밀해져 갔다.

운전하는 도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생곰을 만나기도 했다.
안내서에서 보았던 흑곰이었는데 카메라를 꺼내기도 전에 숲속으로 사라져버려 아쉬웠다.
그 이후로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항상 아내의 손에 ‘장전’ 상태로 카메라를 들고 다녔지만 사슴처럼 생긴 동물 이외에는 만날 수 없었다.

공원의 곳곳에는 곰에 대한 주의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주로 음식물 보관에 관한 사항이었다. 예민한 후각의 흑곰은 차 안에 놓아둔 음식물을 자주 노리는 듯 했다.
곰에게는 벤쯔의 가치보다 과일 하나가 더 중요하므로 때로 차량 파손도 서슴지 않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모든 피크닉 장소에는 철제로 만든 음식물 (공동) 보관함이 준비되어 있었다.

흑곰이 다가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잔돌을 던져 겁을 주어 쫓으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직후의 곰이라던가,
아니면 종로에서 빰 맞고 홍대 앞에서 분풀이 하는 심성 나쁜  ‘막가파’곰만
만나지 않는다면 사람을 목적으로 한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는 듯 했다.

방문객센터에서 보았던 곰에 대한 주의사항의 서두는 “당신에게 곰을 만나는 행운이
생긴다면...” 이라고 시작되고 있었지만 아내는 곰과의 조우 이후 얼마동안 차에서
내리는 것을 주저하며그것을 행운으로 여기지 않았다.
더불어 장돌뱅이의 유일한 사진 모델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기도 했다.

괜찮을 것이라는 나의 의견이 자신처럼 나도 곰이라곤 동물원 이외에서는
곰을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다지 신뢰를 하지 않았다.
어쨌든 시쿼이아 국립공원은 초입에서부터 곰과 사슴, 그리고 우람한 나무들이
만드는 깊은 숲으로 그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싱싱한 생명력을 우리에게 과시하고 있었다.

방문객센터를 출발한 지 반시간가량 지나니 GIANT FOREST MUSEUM에 도착했다.
고도는 오백미터에서 2천미터 가까이 무려 천오백미터나 상승해 있었다.
박물관 주변에 거대한 붉은 색의 나무들이 서 있었다.
박물관 내부의 전시물보다 외부의 나무들이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경외감 같은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오직 캘리포니아의 시에라 네바다 SIERRA NEVADA 서쪽
경사면에서만 자란다는, 3천년이 넘게 살며 산불과 곤충들에도 강한 내성을
지녔으며 늙어서 죽는다기보다 넘어져서 죽는다는 거대한 나무
- THE GIANT SEQUOIA 나 SIERRA REDWOOD, 혹은 단순히 BIG TREE 등으로
불리는 시쿼이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크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태평양 연안에서만 자란다는 COAST REDWOOD는 이와 비슷하나
좀 더 키가 크고 늘씬한 외향을 지녔다.)

박물관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GIANT FOREST 가 시작될 것이므로
우리는 잠시 곁길로 빠져 MORO 바위로 향했다.
모로바위에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백 미터 정도 올라가면 정상이었다.

해발 2천 미터의 정상에서는동쪽으로 아침 햇살 속에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푸른 실루엣을
볼 수 있었고 서쪽으로는 우리가 올라온 길들을 거칠 것 없이 조망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슴이 후련해지는 장소였다.


*위 사진 : 킹즈캐년에 있는 GENERAL GRANTE. 키는 아래의 샤먼트리보다 작지만
               굵기는 더 굵다.


*위 사진 : 시콰이어 공원에 있는 제너럴 샤먼 나무. 높이가 84미터, 둘레가 32미터, 직경이 11미터,
             무게가 2천톤에 이르
는 세계 최대의 나무이다.  


*위 사진 : TUNNEL LOG


*위 사진 : 1917년에 넘어졌다는 AUTO LOG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숲길을 만나게 되었다.
시쿼이아 국립공원에서 킹즈캐년 국립공원까지 온통 나무에 휩싸인 길을 지났다.
나무! 나무! 나무!
숲! 숲! 숲!

곳곳에 이름난 나무들이 있었다.
일테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는 제너럴 셔먼 GENERAL SHERMAN TREE 나  
미국의 크리스마스 나무로 지정되어 매년 시즌에특별한 행사가 열린다는
GENERAL GRANT TREE 등이 산재해 있으나, 구태여 그런 유명한 나무들에
집착하지 않아도 도로변에 보이는 익명의(?) 나무와 숲은 거대했고 깊었다.
위대했고 감동스러웠다.

세계를 호령하는 군사력이 아닌 넓고 깊은 미국의 자연
- 그것은 아내와 내가 미국을 부러워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셔먼장군 나무나 그랜트장군 나무 등 모두 남북전쟁 당시의 영웅들의 이름이다.
또 제너럴샤먼 호는 구한말 대동강으로 침범하여 행패를 부리다가 조선군의 공격으로 침몰한
배의 이름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하여금 오년 뒤 강화도를 재 침범하는 신미양요의 빌미를 만들었던.)

소설가 죤스타인벡은 그의 여행기 『찰리와 함께 한 여행』에서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나무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미국삼나무는, 한번 보기만 하면, 그 흔적이나 영상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가시지 않는다. 이 나무를 그림이나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해낸 사람이 없다.
   이 나무가 풍기는 느낌을 도저히 옮겨놓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삼나무에서는 침묵과 무언가 두려움마저 섞인 엄숙한 마음을 느낀다.
   도시 믿을 수 없을 만큼 높기 때문만도 아니요, 보는 이의 눈에 수시로 변화를
   던져주는 그 빛깔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알고 있는 어떠한
   나무와도 다르다. 말하자면 유사 이전의 어떤 시대를 대표하여 지금에 나타난
   사신과도 같다. 아득한 그 옛날 석탄기의 석탄으로 바뀌었던 은화식물의 신비성을
   풍기고 있다. 또 그 스스로의 명암을 지니고 있다. 제 아무리 허영심이 강하고
   머리가 나쁘고 또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이 나무 앞에서는 경의와
   존경을 안 느낄 수 없다. ‘존경’ 이것이야 말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이의를 허용치 않는 이 엄숙한 왕자 앞에서 인간은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시쿼이아 & 킹즈캐년 국립공원을 돌아보며 아내와 나는 그의 글에 깊은 동감을 보냈다.

그러나 여행자에게는 위대한 문학가의 사색보다 같은 여행자들의 간단한 평가가
효과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 여행자 사이트에서 보았던 GENERAL SHERMAN
TREE에대한 짧은 평가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차창 밖으로 지극히 짧은 순간만
보았던 공원의 모든 나무들에게 바치는 말이기도 했다.

   Okay, It is a big tree.
   It's THE big tree.
   It's THE TREE everyone came to see.
   Repeat : It's the tree EVERYONE came to se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