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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PCH를 따라 9(끝).- 호사스러움의 극치, 허스트캐슬

by 장돌뱅이. 2012. 4. 27.

보통은 아침에 아내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는데 전 날 강행군의 운전 때문인지
이 날은 아내와 같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 깊은 잠을 잔 덕분에 몸은 개운했다.
휴일이 좋은 것은 잠에서 깨고 나서도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게으름을 피우는 아침의 잠자리는 여행만큼 감미롭다..


*위 사진 : 숙소의 주인장과 같은 날 묵은 투숙객들과 함께 한 아침식사

투숙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OLALLIEBERRY의 아침은 훈훈했다.
가깝게는 엘에이에서 온 젊은 부부가 있었고 멀리서는 프랑스에서 온 부부도 있었다.
주인인 미세스 MARJORIE의 싹싹한 음성이 밝고 기운찬 분위기를 북돋우었다.
여행이라는 행위 안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곳 숙소의 아침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에 한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아내와 내가 그렇듯 얼굴까지 새겨 두지는 못하겠지만,
‘그날 아침 한국에서 온 중년의 부부가 있었다’ 는 것 쯤은 말이다.
그게 무슨 대수랴 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억하는 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간단하였지만 흔히 말하는 ‘가정식’의 정성이 깃든 식사도 인상적이었다. 


*위 사진 : 비지터센터에서 올려다 본 산 정상부. 허스트캐슬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허스트캐슬 HEARST CASTLE (www.hearstcastle.com)을 가는 날이다.
홈페이지에서 10시 50분 투어를 예약 해놓은 터였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숙소에서 그곳까지는 1번 도로를 타고 10여 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였다.


*위 사진 :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허스트와 '맨입으로 태어난 사람'의 아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팔자 좋은 사람을 일컬어 영어로는
‘은숫가락을 물고 태어난다’ 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허스트 캐슬을 지은 랜돌프 허스트 (1863~1951)라는 사람이 바로
'born with silver spoon in his mouth' 한 팔자였다.
그는 실버 정도가 아니라 골드와 다이아몬드 숟가락을 함께 물고 태어났다고
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거부의 부모 밑에서 그것도 외아들로 태어났다.

덕분에 허스트는 열 살 때부터 어머니와 유럽을 여행하며 유명한 건축물과
예술품들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허스트캐슬의 비지터 센터에서 보여준 그의 ‘전기’ 영화에 따르면
그는 이 어릴 적 여행이 나중에 미국에 유럽의 고성(古城) 같은
건축물을 세우겠다는 꿈을 키운 계기가 되었다는데...)

하버드대학교에서 2년간 저널리즘을 공부하기도 했다는 그는 어쩐 일인지
학업을 그만두고(퇴학 당하였다고도 한다.) 아버지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다.
특히 그는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경영실적이 저조한 신문사를 매입하여 판매가격
인하조치에, 신문에 현란한 표제와 컬러기사, 그림을 삽입하는 등으로 신문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고, 대중의 호기심을 끌만한 범죄나 괴기사건, 성적 추문 등의 선정적인
내용의 기사에 집중함으로써 판매 부수의 급신장과 흑자를 이룩한다.
론리플래닛에는 당시의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HEARST INVENTED NEWS IF THERE WASN'T ANY.”


*위 사진 : 투어 대기 장소와 투어버스

1889년 허스트의 신문(“모닝 저널”)은 퓰리처가 운영하던 경쟁지 “뉴욕 저널” 인기 만화‘
노란 아이(YELLOW KID)’의 스텝들을 모두 스카우트하여 자신의 신문에 또 다른
‘노란 아이’를  연재한다. 이에 “뉴욕 저널”도 지지 않고 계속하여 ‘노란 아이’ 를
연재함으로서 두 신문 간에 판매부수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게 된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두 신문의 기사는 점점 더 선정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노란 아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여 이후 선정적인 기사를 게재하는 신문과 잡지를
일컬어 ‘황색저널리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허스트의 경쟁 상대자였던 퓰리쳐는 우리에게 퓰리처상으로 귀에 익은 사람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이런 행위를 후회하였다고 한다. 그의 유언과 유산으로 언론계의
노벨상이라는 퓰리처상이 만들어졌다.

미국 전역에 50개 이상의 신문사를 소유하기도 했던 허스트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은 물론 영화 제작에까지 투자를 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신문 운영의
‘재능’을 볼 때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919년부터 JULIA MORGAN이라는 건축가와 함께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어릴 적 유럽의 성들을 돌며 얻었다는 '영감'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된 계획은 끊임없는 공사로 커지지면서 1947년 무렵에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위 사진 : 허스트캐슬의 투어는 가이드를 따라가야 하는 방식이다.

허스트캐슬의 투어는 5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1번 투어가 첫 방문객에게 적당하다고 하여 신청했다.

투어는 비지터 센터에서 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20분 정도 올라가니 검은 복장을 한 안내 직원 두 명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투어는 철저히 안내원을 따라가게 되어 있었다.
탐방객들의 국적을 물어본 뒤 자신의 ‘캘리포니아 버전’ 영어 안내를 이해해 달라는
익살로 시작된 안내원의 설명을 아내와 나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호사스러움’만을 구경하는 투어에서 굳이 설명을 전부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았다. 눈으로만 보는 투어만으로도
허스트의 호사는 흘러 넘쳤다.  

16만 평의 대지에 165 개의 방이 있는 거대한 저택에는 NEPTUNE POOL이라 불리는
옛 로마풍의 실외수영장과 이태리 타일공이 직접 와서 꾸몄다는 실내수영장 ROMAN POOL
이 있고, 동물원(지금은 없어졌지만), 식물원과 소형 비행장까지 딸려 있어 단순히 크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AMERICAN CASTLE’이었다.


*위 사진 : 넾튠풀

내부는 외부보다 더 화려했다.
옛 수도원에서 가져왔다는 식탁과 의자가 길게 놓인 식당의 벽에는 휘황찬란한
중세의 비단 깃발이 높이 걸려 있고 천장은 옛 이탈리아 궁전에서 가져온 것이며.
당구장의 벽에 거린 커다란 걸개그림도 엄청난 금액을 주고 사온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허스트캐슬 곳곳에는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의 진귀한 골동품과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두 시간 가까운 투어동안 본 것이 허스트 캐슬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엔 허탈해지기조차 했다.

허스트캐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놀랄만한 화려함과 극에 달한 사치.
아내와 나 역시 거기에 부러움과 감탄을 보내기도 했다.
한 세상을 이렇게 살다간 인생도 있구나!


*위 사진 : 허스트캐슬 내의 한 거실

그러나 어딘가 허전했다.
모든 부러움과 감탄이 반드시 감동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재력에 딴죽을 걸거나 시샘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수집벽이 일제의 침탈에 맞서 사재를 털어 민족 문화유산의 정수들을
수집한 우리의 간송 전형필과 다르고, 비록 남의 나라 유산이라 하더라도
태국의 비단이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에 주목하여 그것의 사업화에 성공한
짐톰슨과도 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모아서 장식하는,
그를 통해 자신의 무엇인가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진득히 붙어 있는 듯한.


*위 사진 : 내가 사는 아파트 전체 넓이보다 훨씬 더 넓은 식당.

허스트캐슬.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허스트가 남긴 그의 집.
비지터센터 내의 아이멕스 극장에서 본 허스트캐슬의 내력을 그린 영화에서는
허스트캐슬에 ‘BUILDING THE DREAM’ 이라는 수사(修辭)적인 표현을 붙였다.


*위 사진 : 허스트와 그의 선택을 받은 손님들이 사용하던 당구장과 극장. 극장에선 5분
             남짓한 길이의 기록 영화를 
방문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반면에 론리플래닛 LONELY PLANET 에는 허스트의 그 ‘DREAM’과 ‘BUILDING’ 에
대하여 “A MONUMENT TO WEALTH AND AMBITION”로 간결하게 표현했다.
또한 여행안내서로서 있음직한 허스트캐슬에 대한 수다스런 찬사에도 지극히 인색했다.


*위 사진 : 실내수영장

찬사는커녕 “자신의 '위력 과시’를 위한 집착의 결과물인 허스트캐슬을 위해 허스트가 성당의
천장이나 로마시대 기둥 등을 구입할 때, (그의 아내이자 영화 배우였던) MARION
DAVIES는 헐리우드의 스타들을 초청하여 수영과 테니스를 즐기고 온갖 진귀한
동식물들을 관람하며 주말을 보냈다” 는 내용의 아래 인용글에서는 어딘가 좀
비아냥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HEARST'S OBSESSION FOR POWER CAME TO A CLIMAX WITH
   HIS CONSTRUCTION OF LA CUESTA ENCANTADA, THE ENCHANTED HILL
   KNOWN AS HEARST CASTLE.
   (...) AS HEARST PURCHASED CATHEDRAL CEILINGS, REFECTORY TABLES,
   GRECIAN URNS, AND ROMAN COLUMNS, MARION DAVIES INVITED HOLLYWOOD'S
   ELITE TO SPEND WEEKEND AT 'THE RANCH', PLAYING TENNIS, SWIMMING,
   WATCHING MOVIES IN A FULL-SCALE THEATER, AND DRIVING THROUGH
   THE ZOO AND GARDENS STOCKED WITH RARE, EXOTIC ANIMALS AND PLANTS.


*위 사진 : 허스트캐슬을 돌아보고 나오는 아내. '맨입으로 태어난 사람'과 살면서도 허스트캐슬의
              화려함에 기죽지 않고 씩씩한 모습이다.

감동은 재력을 바탕으로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가치에서 피어나는 자연스런
울림임을 론리플래닛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전 지나온 깊은 산 속에서 보았던 우람한 나무 한 그루의 감동이 그렇지 않았던가.

*태평양연안하이웨이(PCH)는 허스트캐슬을 지나서도 북으로 계속 이어진다.
해안도로로서의 본격적인 아름다움이 이제 시작된다고 한다.
빅서에서 몬테레이를 지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

그러나 잠시 여기서 여행을 쉬어가기로 한다.
샌디에고에서 주말을 이용한 자동차여행으로는 더 이상의 '북진'이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나머지 구간은 내게 좀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연말 휴가를 이용해 볼 생각이다.
그때 다시 PCH 여행기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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