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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PCH를 따라 6. - 시쿼이아 & 킹즈캐년 국립공원1

by 장돌뱅이. 2012. 4. 26.

샌디에고는 공기가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살기에 좋은 곳이지만
미국 여행을 하는 베이스캠프로서는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다.
미국 땅을 직사각형으로 생각할 때 좌측 하단 코너에 위치하여 있어
어디를 가건 먼 거리의 이동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시쿼이아 & 킹즈캐년 국립공원 SEQUOIA & KINGS CANYON NATIONAL PARK
(이하 S&K NP.) 을 가기 위해 출발시간을 한 밤 중으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아침에 출발해서는 S&K NP.에 저녁 무렵에나 도착하게 되어 하루를 그냥
이동과 잠을 자는 데만 쓰게 된다.

물론 그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언제나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주말 이틀뿐이라는데 있다.
국내의 어지간한 곳이라면 그렇게 한다고 해도 1박2일 동안
충분히 돌아볼 수 있겠지만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앞선 여행기에서 말한바 ‘징글징글하게도’ 큰 미대륙에,
그것도 한쪽 구석에 치우쳐 있는 샌디에고에서의 자동차 여행이란
토요일을 그런 식으로 허비할 경우, 월요일 정상적인 출근을 위해서는,
뒷날 잠을 자고 일어나 바로 다시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와야 한다.
어떤 유행가 가사처럼 ‘왔다가 그냥 갑니다’ 가 아니라
‘갔다가 그냥 와야 하는 것’이다.

샌디에고에서 엘에이를 거쳐 S&K NP.의 남쪽 입구에 도착하는 데까지
대략 7- 8시간 걸린다. 주말 이틀 동안 효율적으로 S&K NP.과 주변을
돌아보고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한 유일한 한 방법은 하루 전날 야간 출발뿐이었다.

주중에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몰리는 성수기를 피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항공료와 숙박료를 절약할 수 있고 선택의 폭도 커지겠지만,
나의 생활이란 게 애초부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놓으니 이 넓은 미국땅을
여행함에 있어 국내에서보다 강도 높은 강행군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밤10시 40분 출발.
스타벅스에서 작은 사이즈의 (미국의 S규격은 내가 생각하는 ‘大’ 보다 크다)
커피 두 잔을 사다가 운전석 옆 컵 고정대에 세워놓았다.
가다가 심심하면 마시고 또 커피가 졸음도 예방한다고 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다.
뒷좌석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20년 묵은 슬리핑백 2개를 펼쳐 놓았다.
아내의 잠자리였다.

가는 길은 간단했다.
805번과 5번 그리고 99번 도로를 번갈아가며 북쪽으로 향하면 될 것이었다.
벌써 몇 번을 지도를 보며 확인해 두어서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엘에이를 지나며 한밤중이 되자 도로는 장거리를 운행하는 트레일러들이 지배하는 듯 했다.
거대한 차량들이 불을 밝힌 채 긴 행렬을 이루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차량들마다 화물을 적재한 컨테이너 부분을 갖가지 색의 전등으로 장식한 것이 특이해
보였다. 동부까지는 두 명의 운전사가 교대로 운전을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새벽까지 곁에서 나의 운전을 지켜주던 아내가 뒷좌석의 침낭으로 건너갔다.
나는 음악의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주행선으로 차선을 바꾸었다.
그리고 CRUISE 기능으로 속도를 일정하게 고정시켰다.
운전 중 아내가 잠을 자는 시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순한 운전자가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급제동과 급가속은 절대 금지사항이고 나의 진행방향 앞뒤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차가 있어도 터져 나오는 육두문자를 입안에서 다시 목구멍 너머로
삼켜야 한다. 그러다보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엔진소리가 요란하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마음도 차분해진다.

보름이 가까웠는지 빈 하늘에 달이 밝았다.
달빛에 검은 실루엣으로 드러난 길 주변의 산들이 우리와 반대쪽으로 흘러갔다.
프리웨이를 벗어나 소로로 접어들자 길 양옆의 밭으로 줄을 맞추어 들어선 나무들이
자주 보였다. 달빛 속에 어렴풋이 보이지만 그 규모가 상당해보였다.
과수원인가? 무슨 과일이지?
나중에 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확인해보니 오렌지 밭이었다.
귀에 익은 캘리포니아오렌지.


*위 사진 : 시쿼이아 SEQUOIA 국립공원 입구

아침 다섯시경.
350마일을 달려 우리는 시쿼이아 SEQUOIA 국립공원의 남쪽 출입구를 통과했다.
이른 새벽이라 입장료 20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국의 어떤 공원에선가 -겨울철 데쓰벨리에선가는 자발적으로 요금을 내도록
무인게이트를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시쿼이아는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아직
공무원 출근 전인 듯 했다.)

공원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도 의자를 뒤로 젖히고 한 시간 가량 눈을 붙였다.
날이 밝아 왔다. 차문을 열고나서니 깊은 산 특유의 냉한 공기가 달려들었다.

주차장 아랫쪽으로 미국에 온 이래 처음 보는 초록의 나무가 우거진 산과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내려다 보였다. 덕분에 우리는 잠시 우리가 덕유산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기도 했다.

우리는 가벼운 체조로 밤새 구겨진 몸을 풀고
준비해온 빵과 과일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 햇빛이 산꼭대기에 노루꼬리만큼 비치기 시작했다.

*시쿼이아 & 킹즈캐년 국립공원 SEQUOIA & KINGS CANYON NATIONAL PARK 은
  엄밀히 말해 PCH와 상관없는 위치에 있다. 차로 두 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PCH의 여행기에 포함시킨 것은 아내와 내가 다음 날 산타바바라 북쪽의
  PCH를 여행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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