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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캐년랜즈와 모뉴멘트 밸리

by 장돌뱅이. 2012. 5. 7.

캐년랜즈 국립공원 CANYON LANDS NATIONAL PARK
모압 MOAB은 아치스국립공원 ARCHES NATIONAL PARK와 캐년랜즈 국립공원을
돌아보기 위한 베이스캠프로서 최적인 자그마한 도시다. 두 공원과 거리상으로 매우
가깝고 식당과 숙소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었던 RED STONE INN은
이름부터 모압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숙소였다. 전자렌지와 냉장고 정도가
있는 방은 단출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하룻밤을 묵어가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위 사진 : MOAB 시내의 작은 숙소 RED STONE INN

우리는 아침식사를 캐년랜즈의 공원 내에서 하기로 하고 출발을 서둘렀다.
오늘도 캐년랜즈와 모뉴멘트밸리를 거쳐 콜로라도주의 코르테즈 CORTEZ 까지
먼 길을 가야하는 하루였다. 아침 날씨는 맑았다.
하지만 강수 확률 40%라는 예보가 신경에 쓰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라면 그런대로 운치도 있겠지만
왠지 넓은 황무지에 내리는 비가 그리 얌전할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위 사진 : 캐년 랜즈 가는 길

캐년랜즈는 아치스공원의 서남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황무지 지대이다.
수치만으로는 그 규모를 상상하기가 힘들지만 자료를 보니 넓이 4백 평방마일의
해발 3800피트에서 6천 피트에 이르는 고원지대라고 나와 있다.
그랜드캐년 보다 넓다고 하면 느낌이 올까?

콜로라도강 COLORADO RIVER 과 그린강 GREEN RIVER이 흐르기는 하나
강수량도 적어 주거는 물론 농사도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한다.
오직 검붉은 색의 깊은 계곡과 까마득한 절벽, 그리고 바위탑과 넓은 평지만 있는 곳.

가지고 다니는 여행 안내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UTAH'S LARGEST NATIONAL PARK IS NOT FOR THE SIGHTSEER OUT FOR
   A SUNDAY AFTERNOON DRIVE. INSTEAD, IT REWARDS THOSE WILING TO
   SPEND TIME AND ENERGY - LOTS OF ENERGY - EXPLORING THE RUGGED
   BACK COUNTRY                - FROMMERS 중에서 -

그러나 어쩌랴. 에너지가 넘쳐도 늘 시간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이른 아침부터 짧은 ‘AFTERNOON DRIVE’를 하러 가야했다.


*위 사진 : 데드호스포인트

첫 방문지는 DEAD HORSE POINT.
서부개척시대에 카우보이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수많은 말들이 험한 계곡에 갇혀
나가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국립공원 밖에 위치한
준국립공원으로 입장료도 별도로 내야 했다.


*위 사진 : 데드호스 포인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계곡은 검붉은 계곡은 오랜 세월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듯
깊고 험해 보였다. 탁한 콜로라도 강물이 웅장한 절벽을 휘감고 있었다.
드센 바람까지 불어 자칫 발을 한번 잘못 디디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세상의 끝 같은 아득함과 절박함을 키우고 있었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에 인간이
느끼는 최초의 감정은 두려움이라고 했던가? 계곡 어딘가에 거대한 괴물이라도
숨어 있는 양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위 사진 : 데드호스포인트

캐년랜드는 두 개의 강에 의해 세 지역 - 아일랜드 인더 스카이 ISLAND IN TH SKY 와
니들즈 THE NEEDLES, 그리고 메이즈 THE MAZE - 으로 나뉘어진다.
우리가 간 곳은 그 중에서 아일랜드인더스카이 지역이다.
사실 우리가 예정한 반나절은 그곳만 주마간산격으로 돌아본다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위 사진 : 캐년랜즈에서의 아침 식사

공원의 비지터 센터 근처 언덕에 차를 세우고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바람이 차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세차서 차안에서 물을 끓여 먹었다.
창밖으로 원시의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먹는 한 끼가 그럴 듯 했다.


*위 사진 : 캐년랜즈의 꼬마 방문객들. 너무 앙증맞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서쪽 하늘에 번지던 먹구름이 흩어지면서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씨에 대한 걱정처럼 부질없는 것이 있으랴,
맑은 날씨가 바란다고 오는 것인가 말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담아두는
걱정이나 욕망이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을까?

식사 후엔 인랜드스카이의 남쪽 끝의 그랜드뷰포인트로 내려가 다시 입구 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며 BUCK CANYON OVERLOOK 이나 GREEN RIVER OVERLOOK 등을 돌아보았다.
어느 곳이나 첫 방문지였던 데드호스 포인트에서 보는 풍경과
비슷했다.
그래도 보는 곳마다 느껴지는 감동은 새로웠다.

공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 들른 곳은 메사아치 MESA ARCH 였다.
아치라면 하루 전 가보았던 아치스공원에서 많이 보았으나
그곳이 평지 위에 만들어진 아치라면 메사 아치는 계곡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위치해 있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메사 아치는 일출을 보기에 좋다고 나와 있었지만 한 낮에 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에어포트타워 AIRPORT TOWER라 이름 붙여진 첨탑의 바위와
벅캐년 BUCK CANYON 등이 아치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모뉴멘트밸리 나바호부족공원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캐년랜드에서 모뉴멘트밸리까지는 차로 세 시간 정도를 달려야 했다.
대부분의 길은 인적이 드문 사막 지형 속으로 이어졌다.
인적뿐만이 아니라 오고가는 차량마저도 드물었다.
바람만이 흙먼지를 자욱한 안개처럼 일으키며 텅 빈 길과 벌판을 휩쓸고 있었다.  


*위 사진 : 모뉴멘트밸리 가는 길. 바람이 몰고온 흙먼지가 자욱했다.

메마른 붉은 황토 벌판과 그 위에 우뚝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암석 기둥과 바위뿐인 황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곳은 그러나 오랜 세월 이곳에 살아온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삶의 현장이고, 백인들과의 싸움에서 처절하게 패배해간 그들의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위 사진 : 모뉴멘트밸리 가까운 곳에 있는 멕시칸 모자 바위 MEXICAN HAT

여행을 시작하기 전 아내와 헐리우드의 옛 영화 역마차(STAGE COACH)를 보았다.
1938년 존포드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서부시대의 미국인 이미지를 상징한다는
죤웨인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이다. 그 영화 속에 이곳 모뉴멘트 밸리가 나온다.
그리고 선량한 미국인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디언들이 나온다.
영화의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말을 타고 미국인들을 습격할 뿐인
이 ‘야만인’들을 이끄는 사람으로 영화 속 백인들은 제로니모를 자주 말했다.


*위 사진 : 영화 역마차의 한 장면. 뒤에 보이는 배경이 모뉴메트밸리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텔레비젼 촬영)

제로니모는 실존 인물이다.
본래 이름은 ‘하품하는 사람’으로 1829생이다. 그는 원래 과격파가 아니었으나
1858년 백인들에 의해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이 잔인하게 살해 당한 후
무서운 전사로 변해 1886년 체포될 때까지 백인들과 격렬한 전투를 감행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역마차를 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죤웨인의 장총에 맥없이 쓰러지는 인디언들을 담은 전투씬은 기술적으로는
1930년대 영화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박진감이 있는 장면이었지만
60년대도 아닌 요즈음 세상에 그런 순간에 박수를 치는 사람은 없으리라.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미대륙에서 인디언들의 슬픈 패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기가 막히게 말을 잘 타는 인디언의 모습도 원래
미대륙에는 태고 이후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이 총과 함께 스페인 군대가
가져온 ‘선물’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나바호족도 1846년 뉴멕시코주가 미국영토로 편입되면서 불행한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숱한 전투 끝에 패망한 나바호족은 8천5백명의 포로가 되어 3백마일 이상 떨어진 뉴멕시코주의
SUMNER 요새까지 끌려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미국정부는 세 가지 선택권을 제안했다.
첫째는 동부지역의 기름진 강가에 사는 것,
둘째는 SUMNER 근처에 사는 것.
그리고 셋째는 지금까지 살아온 그 메마른 사막으로 돌아가는 것.
나바호 인디언들은 주저 없이 그들이 살아온 ‘숭고한 성지’인 황무지를 삶의 근거지로
선택했다. 지금은 약 17만명의 인구가 자치구역 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163번 도로를 따라 모뉴벤트 밸리의  북동쪽 진입로를 따라 들어섰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들어서는 길에 바람은 여전히 드세게 불었다.
길가에 버려진 듯한 허름한 가건물들이 보여 들어가 보니 기념품점으로 쓰던
곳이었다. 가게 모퉁이에 성조기가 찢어진 채로 흩날리며 을씨년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이 황폐해 보이는 곳에서 나바호족의 후예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영화 속에 나오는 멋진 경관의 바위가 늘어선 도로를 벗어나  
인가와 곡식을 가꾼 들판이 있는 길로 접어들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았는데
난데없이 차 하나가 다가왔다. 운전대를 잡은 의 중년의 인디언 아줌마가 이곳은
방문객들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니 나가달라고 공손하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관광 지역을 벗어나 인디언 주거지역으로 들어갔던 것이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 그녀는 앞장서 나의 차를 인도했다. 머쓱해진 우리는
그 차를 따라 나오는 김에 아예 모뉴멘트밸리 자체를 벗어나 버렸다.
왠지 악착같이 풍경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2007년 말에도 나는 모뉴멘트 밸리를 다녀갈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세도나와 비교하며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다 결국 세도나를 택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목적으로 했던 장소에까지는 가보지 못하고 차를 돌리고 말았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런 곳이 있다.
갈려고만 하면 무슨 일이 생겨 못 가게 되는 곳 말이다.
일례로 내가 경남 통영의 매물도를 가려고 처음 마음먹었던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이다.
쿠크다스란 과자 선전에 나와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스킨스쿠바를 하던 친구 형으로부터
그 섬에 대해 들으며 호기심을 키우다 어느 잡지에서 섬 전체를 조망한 사진을 보고
반하여 아내와 여름휴가철이면 가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가려고만 하면 매번
회사에 일이 생기거나 태풍이 오거나 하여 계획을 접어야했고 결국 지금까지 못가보고
말았다. 미국에 사는 동안 모뉴멘트밸리는 다시 한번 시도해 볼 작정이다.
내 여행에 또 다른 매물도가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뉴멘트밸리에서 다음 목적지인 코르테즈 CORTEZ 까지는 또 다시 세 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중간에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 의 4개 주가 합치는 지점인
포코너 FOUR CORNER에 내려 이정표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했으나
어둠이 내리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코르테즈까지의 길이 아직 멀었다.
나는 지그시 가속기의 페달을 밟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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