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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메사버드, 그리고 페인티드 데져트 와 '화석의 숲'(그래드서클 끝)

by 장돌뱅이. 2012. 5. 8.

메사버드 국립공원 MESA VERDE NATIONAL PARK
코르테즈 CORTEZ의 COMFORT INN은 만족스럽고 잠은 푸근했다.
컴포트인은 베스트웨스턴 BEST WESTERN이나 라마다 RAMADA처럼 깔끔한 중급의
숙박체인이다. 굳이 예약을 하지 않고 가더라도 미국 여행 중에 맥도날드만큼이나 자주
만날 수 있고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언제든 이용이 가능한 숙소라 편리하다. 잠자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부대시설은 보통 간략하거나 생략되어 있는 편이다.
우리가 코르테즈에서 묵었던 컴포트인은 실내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어 이채로웠다.


*위 사진 : 뉴멕시코주 코르테즈시의 컴포트인

메사버드 국립공원은 코르테즈에서 10여분의 거리에 있었다.
공원 입구까지가 그렇다는 이야기고 입구에 들어서서도 비지터센터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더 운전해야 하고 우리의 목적지인 절벽궁전 CLIFF PALACE 까지는
또 한참을 가야 한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내 나라처럼 가을빛이 완연했다.
계곡과 산정을 뒤덮은 키 작은 관목 숲엔 노란빛이 화사하게 내려 있었다.
먼 산의 꼭대기에 고깔모자처럼 내린 흰눈에서 벌써 겨울도 멀지 않음이 느껴졌다.
차도 가까이까지 내려와 풀을 뜯는 몇 마리의 사슴 무리들이 보였다. 그들도 겨울채비를
서두르고 있는지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디밀어도 개의치 않고 하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록의 역사는 1492년 콜럼버스가 북미대륙을 '발견'한 이후에야 미대륙의 역사를 적고
있겠지만 그곳은 그 이전 까마득한 세월부터 여러 종족의 인간들이 살고 있던 땅이다.
적어도 백인들이 오기 전까지 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들만의 흥망성쇠를이루며 살아왔다.
그 흔적들은 바위에 그려진 그림이나 주거의 흔적으로 드물게나마 남아있다.
수십 곳에 달하는 미국의 국립공원 중에 유일하게 인간이 살다간 자취 때문에 국립공원 반열에
오른 메사버드 국립공원은 그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집중되어 있는 남아 있는 지역이다.
서기 600년과 130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주거 흔적이 무려 4000여 곳이나 흩어져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고학적 현장인 것이다.


*위 사진 : 메사버드의 계곡. 계곡의 절벽을 따라 원주민들의 주거지가 있다.

메사버드는 스페인어로 “녹색테이블”이라는 뜻이다. 테이블처럼 평평한 지형을 메사로 부르고
그곳을 덮은 숲 때문에 '녹색'이라는 뜻의 버드가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애나사지(ANASAZI)로 불리는 원주민이 이곳 메사버드의 옛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옥수수와 콩 농사를 짓고 칠면조를 키우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처음에 이들은 메사 정상의 평평한 곳에 땅을 파고 나무와 풀로 지붕을 이어 살았으나
1200년대부터 절벽 중간에 주거지를 만들어 옮겨와 살기 시작했다.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인근의 또 다른 부족들과의 다툼이 원인이아닐까 추정되기도 한단다.

도기와 바구니 등을 만들며 자신들만의 문명을 일구던 애나사지는 1300년대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메사버드를 비워둔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그 이후 1891년 눈 내린 12월 어느
날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CHARLES와 RICHARD라는 두 명의 카우보이가 다시 발견할 때까지
애나사지의 주거지는 철저히 버려진 채로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메사버드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비지터센터로 가서 가이드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공원 내 주거흔적이 수없이 많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허락된 곳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나마도 대부분 지정된 시간에 가이드를 따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대표적인 절벽궁전 CLIFF PALACE의 투어를 신청하고 남는 시간에
CHAPIN MESA MUSEUM을 둘러보았다. 박물관에서 내려다보이는 골짜기 건너편에는
가이드없이 돌아볼 수 있는 스프루스 트리 하우스 SPRUCE TREE HOUSE가 있었다.
절벽 중턱에 들어선 1200년대의 돌집이다. 100여 개의 방이 있고 100명 정도의 인원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위 사진 : SPRUCE TREE HOUSE

좀더 규모가 크고 화려한 절벽궁전은 가이드를 따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30명쯤의 다른 방문객과 함께 출발했다. 공원 소속의 중년의 가이드는 유머러스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유감스럽게도 이름을 잊었다.) 안내를 시작했다.절벽궁전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애나사지에 대해 제법 긴 설명을 하였는데 아내와 나의 ‘기초영문법’ 수준의 듣기 실력
으로는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는 힘이 들었다. 솔직히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리라. 창경궁 같은 곳을 돌아볼 때도 안내원의 설명과 함께 하면 얼마나 그 시간이
풍성해지고 유익해졌던가를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기필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고학 공부도 열심히 해서 다음에 올 때는
가이드가 대답하지 못할 어려운 질문을 마구 퍼부어주자”고 가이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처절한 복수를(?) 다짐해 보았다.


*위 사진 : 절벽궁전

절벽궁전은 앞서 돌아본 곳과 규모만 다를 뿐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절벽의 바위를 지붕으로 그 아래쪽에 작은 운동장만한 공간이 있고 애나사지인들은 맨손으로
벽돌담을 만들어 그 공간을 이리저리 나누어 사용했다.

그 안에 키바(KIVA)라고 불리는 둥근 방이 서너 개 있었다. 하나하나가 어른 10여 명이 둘러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구덩이였다. 그 안에는 불을 피우는 화덕과 연기를 빼는 환기장치 등이
갖춰져 있었다.


*위 사진 : 절벽궁전 내의 키바 KIVA

“WHAT WAS THE LIFE LIKE IN THIS COMMUNITY?”

궁전을 돌아보는 동안 입구의 안내판에 써있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의 상상 속에 그곳의 삶이라는 게 팍팍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지난 며칠 동안 자연적인 경관만 보고 다녀서인지 메사버드에 묻어 있는 인간의 체취는
따뜻한 질감으로 다가왔다.


PAINTED DESERT & PETRIFIED FOREST 국립공원
메사버드에서 다음 목적지인 페인티드 데져트까지는 세 시간 정도를 가야한다.
미국여행에서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
그것은 미국을 자동차롤 여행하는 사람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그래 니네 정말 큰 나라다’
아내와 나는 미국의 땅덩어리에 대한 원망(?)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되뇌며 길을 달렸다.
달리면서 음악을 들었다. 노래를 불렀다. 이야기를 나눴다.그것도 점차 시들해지면 침묵을
즐겼다. 자동 주행 장치로 속도를 고정시켜 놓고 아스라이 뻗어나간 텅 빈 길을 달리며 도시
에서처럼 조급하게 서둘 일은 없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한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운전을
한다. 손끝을 타고 오는 연애시절의 짜릿함은 무뎌졌을지라도 해묵은 세월만이 줄 수 있는
따사롭고 든든한 감촉이 그곳에서 피어난다. 그러는 사이 도로와 주변 황무지는 자꾸 뒤로
밀려가고 먼 하늘의 흰 구름은 어느 새 가깝게 다가와 있곤 한다.

PAINTED DESERT는 아득한 옛날부터 쌓이고 쌓인 토사층이 지각변동으로 융기된 후
침식되어 지질층이 드러난 곳으로 지질층마다 다른 색깔이 마치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 같다.

차를 몰고 드라이브코스를 따라가며 보는 사막에는 장구한 세월동안 뒤척여온 자연의
결과가 검붉고 흰 색의 어울림으로 드러나 있었다. 연간 강우량이 10인치 이하인 이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아니겠지만 비가 온 뒤에는 색상이 선명해져 더욱 신비로운 빛을
띤다고 한다.


*위 사진 : 시카고에서 LA까지 이어졌던 옛길, ROUTE66이 페인티드데져트와 화석의 숲 사이를
               지나고 있다. 그 곁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긴 열차가 지나고 있었다.

페인티드 데져트의 남쪽 끝은 40번 프리웨이를 넘어 ‘화석의 숲’ 공원 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로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 27마일을 달리다보면 사막 위에 굵고 거대한
나무를 토막으로 잘라 놓은 듯한 화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무 형상을 한 바위들인데 그 단면이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위 사진 : '화석의 숲' 공원 들어가는 길

약 2억년 전 이곳은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한 숲이었다고 한다. 지진과 홍수, 그리고 화산으로
폭발로 생겨난 흙과 화산재들에 큰 나무들이 묻히는 상황이오랜 시간 반복되었다.
동물과 식물이 땅에 묻히면 썩어버리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주위의 광물질에
의해 그 세포가 대치되어 원래의 모양대로 화석화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이곳 공원에서 보게 되는 나무 화석인 것이다.  

원래는 지금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화석들이 있었으나 서부로 진출한 백인들이 특이한
이곳의 광물로 공예상품을 만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반출을 했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미정부는 이곳을 1906년 NATIONAL MONUMENT로, 1962년에는국립공원으로 지정 했으나
지금도 일년에 10톤 정도의 화석이 알게 모르게 없어진다고한다.


*위 사진 : 화려한 나무 화석의 단면. 마지막 사진은 공원에서 구입한 엽서의 사진임.  

공원의 남쪽 문에 도착할 무렵 해는 그 마지막 꼬리를 지평선 너머로 감추었다.
180번 프리웨이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달릴 무렵에는 서쪽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며
어둠이 밀려왔다. 아내는 그 끝없는 벌판을 보며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난다고 했다.
어느 덧 또 한번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 숙박지인 프래그스태프 FLAGSTAF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뒷날은 7 시간을
달려 집으로 가는 일정만 남는 것이다. 샌디에고를 출발하여 - 자이언 - 브라이스캐년 - 아치스
- 캐년랜드 - 모뉴멘트밸리 - 메사버드 - 화석의 숲 - 샌디에고를 도는 총 3천5백 킬로미터의
먼 여정이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림 속의 부부처럼 우리가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여행에
그리고 그 여행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와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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