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미국 서남부 지역1 - 애리조나 투싼 TUCSON

by 장돌뱅이. 2012. 5. 15.

오래간만에 아침에 출발하는 여행이다.
그것도 느긋하게 아침잠을 자고 일어난 후에.
미국에 온 이래 시간 절약을 위해 늘 밤중에 출발하는 일정을 잡았었다.
원래 연말이면 보름가량을 쉬는 이곳 관행에 올해는 불경기가 더해져
열흘 가량이 더해지면서 연말의 시간이 그야말로 횡재처럼 주어졌다.
“불경기가 다 나쁜 것은 아니네.”
빈곤하기 그지없는 영업 실적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주눅이 들어 내뱉기
힘든 말을 아내에게 가볍게 건네며 핸들을 잡았다.


*위 사진 : 투싼 가는 8번 프리웨이 주변에서 만난 거대한 모래 언덕

오늘 목적지는 애리조나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투싼(TUCSON).
숙소는 투싼 시내의 민박집 엘 프레시도 EL PRESIDO로 잡아 두었다.


*위 사진 : 이번 여행지 미국 서남부

첫 이틀을 그곳에 묵고 난 뒤에는 일정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
어느 곳이건 하루를 더 머물러도 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여유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숙소처럼 여행지도 대충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주 일부를 돌아보는 것으로 정했을 뿐
반드시 어디어디를 다녀오겠다는 투지(?) 어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이제까지 이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행은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월급쟁이가 그렇듯 내게 늘 시간은 한정되고 규정되어 주어졌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엘프레시도는 68세의 패티 PATTI 할머니가 혼자서 운영하는
숙소였다. 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는 두 팔을 벌려 아내를 안아주면서 정감 어린
환대를 해주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벽에 작은 거울이 많이 걸려 있는 것이
특이한, 가정집 같은 안락함이 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우리는 패티할머니가 알려준 숙소 인근의 식당 EL CHARRO CAFE에서
역시 그녀의 추천 음식인 TOPOPO SALAD를 포장해다가 숙소의 방에
붙어 있는 주방에서 저녁을 하여 먹었다. 


*위 사진 : 엘프레시도의 주인 패티할머니의 활기에 넘친 지역 소개

이튿날 아침 식사 자리에는 우리 이외에 두 쌍의 부부가 더 있었다.
한 부부는 캐나다에서 왔고 다른 부부는 미동부의 MARYLAND에서 왔다고 했다.
두 부부 모두 아내와 나보다는 십여 년 이상의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노부부였다.

세상에 보기 좋은 광경 중의 하나가 여행하는 늙은 부부의 모습이다.
그들의 느린 발걸음 속에는 폭풍우가 지나 간 뒤의 바다처럼 고요함이,
함께 나눈 오랜 세월이 만들어내는 원숙함과 평화로움이 깔려있다.
더 이상 어떤 욕심도 없을 것 같은 청정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도 같다.

MARYLAND에서 온 부부는 연말까지 무려 3주 가까이 투싼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하룻밤을 보냈으니 이제 달랑 하루만 더 있으면 떠날
우리의 여행이 갑자기 가난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 오래 머무를 만큼 투싼이
매력이 있느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대답이었다. 하루에 투싼에 있는 박물관을 한 곳
정도씩 둘러보는 것이 그들의 일정인 것 같았다.

이날 식탁에서의 화제의 중심은 최근 추위와 폭설을 몰고 온 미국의 기상이변이었다.
투싼의 아침 기온도 무척 낮았는데, 주인장 패티 할머니의 말로는 최근 몇 년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당에 가꾸어놓은 꽃들을 보호하기 위해
천막을 덮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게스트인 두 부부의 캐나다와 미동부의 겨울
이야기가 이어졌고 한국을 대표한(?) 아내와 나의 한국 겨울도 화제에 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겨울은 춥다가 결론이었다.

“여행자들은 국경이 없는 특별한 국가의 국민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의 국민”
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잠시 스쳐갈 사이지만 같은 ‘여행자 나라의
국민’으로서 같은 시간과 장소를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날 아침은 부담 없고
편안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나의 ‘깨진 영어’만 아니었다면 더욱 편안했을 터이지만.

*2008년 12월의 여행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