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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미국 서남부 지역3 - 화이트샌드

by 장돌뱅이. 2012. 5. 16.

숙소로 돌아와 내일 아침에는 일찍 떠날 예정이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고
미리 작별 인사를 했더니 패티 할머니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가다가 먹으라며
기어코 빵과 과일을 싼 도시락을 건네준다. 우리가 준비해 온 것도 많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패티할머니의 표정과 태도에서 시골집 외할머니 같은 정감이 묻어났다.
가능하면 다시 샌디에고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리리라 아내와 다짐해 보았다.

다음날 아침 예정대로 일찍 투싼을 출발하여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오늘의 주요 일정은 화이트샌드 국립기념물 WHITE SAND NATIONAL MONUMENT
(이하 화이트샌드)를 돌아보는 다 한 가지였다. 그 외에는 숙소조차 예약을 해놓지 않아
가는 데까지 가보리라는 생각이었다. 시간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일정이다 보니 운전을
하는 마음마저 한결 느긋해졌다.

투싼 시내를 벗어나자 길은 다시 어제와 같은 인가가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며 이어졌다.
두 시간 정도를 달리니 애리조나 주 경계를 넘어서 뉴멕시코 지역으로 들어선다.
뉴멕시코주는 미국에서 가장 히스패닉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고 빈곤층이 가장 많은 주이다.
주 경계에서 다시 두 시간 정도를 더 달리니 LAS CRUSES 라는 도시에 들어서면서
110번 프리웨이를 버리고 70번 주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위 사진 : LAS CRUSES를 지나는 길

LAS CRUSES는 ‘십자가’를 뜻하는 스페인어라고 한다.
옛날 아파치 원주민들의 잦은 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숨지면서 도시 곳곳에
십자가의 무덤이 많이 생겨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옛 서부의
총잡이들이 죄를 짓고 추적을 피해 도망쳐오곤 하던 곳으로 (19세기 중반까지는
멕시코 땅이었다.)  그 십자가의 모든 책임이 원주민이었던 아파치에게만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도 같다. 유명한 백인 무법자 빌리 더 키드가 활동하던 지역도
이 부근이다.

흔히 히스패닉이나 유색인종의 밀집 지역에 범죄와 마약이 극성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통계는 그런 선입관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일례로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샌 호세는 아시아, 히스패닉이 50%가 넘고
히스패닉이 70%인 텍사스의 도시 앨 패소의 범죄율은 백인이 대부분인 시애틀의
반도 안 된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대부분은 유색인종보다 이른 바 ‘백인쓰레기( WHITE TRASH)’
라고 불리는 계층, 즉 저학력, 저소득에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하류층 백인 노동
계급에 의해 저질러진다.”(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중)  


*위 사진 : 화이트샌드 가는 길

화이트샌드는 라스크루세스를 지나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멀리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우뚝 선 새크라멘토 산 SACRAMENTO이 건너다보이는
곳이었다. 화이트샌드 부근은 1945년에 세계 최초의 핵실험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미사일 시험장이 있어 많은 지역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화이트샌드에 도착하기 직전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대대적인 검문도 그 때문인
같았다. 면허증을 보여주었더니 나와 아내의 여권까지 요구했다.
혹시나 해서 지니고 온 여권인데 쉽게 통과하는데 덕을(?) 본 셈이었다. 

화이트샌드는 이름 그대로 눈처럼 흰 사막이다. 흰 물질의 정체는 흙이나 모래가
아닌 석고였다. 호수가 증발하면서 그 속에 있던 석고 결정체가 드러나고
이것이 작은 입자로 풍화되었다가 바람에 날리어 형성한 거대한 언덕이다.
지금도 바람의 영향으로 화이트샌드는 조금씩 움직여간다고 한다.

2억4천만 평이라는 면적을 지닌, 숫자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드넓은 사막은  
흰색의 첩첩한 언덕들이 너울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참으로 다양하고도
매력적인 자연을 광활한 국토 곳곳에 보물처럼 지닌 나라가 미국이다.
우리와 세계의 현대사에 미국이란 존재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는
늘 분노를 해왔지만 지난 일년간 미국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만난 자연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흰 모래 언덕의 능선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눈썰매를 타듯
경사면에서 미끄러지며 썰매타기를 즐겼다.

아내와 나도 개구쟁이처럼 언덕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허기가 느껴질 무렵 언덕에서 내려와 공원 내 취사대에서 미루었던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 장소를 향해 길을 떠났다.

숙소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앨러모고도 ALAMOGORDO를 지나
해발 3천 미터 정도의 산 속에 있는 숙소 “THE LODGE AT CLOUDCROFT”에서
묵을까 갈등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고지대의 마을답게
눈까지 내려 있어 운전을 하면서도 몇 번 차를 세울까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른 감이 있어 아쉬움을 접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서둘고 싶지는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을 운전했음에도 그다지 지치지 않는 날이었다.

CLOUDCROFT를 지나 돌고 도는 산길을 내려오니 광활한 사막 지형의 구릉이 이어졌다.
그 사이로 다시 직선으로 뻗어나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길,
길,
길 그리고 또 길.

미국에 온 이래 이처럼 오고가는 차량도 없는 텅 빈 길을 달릴 때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시간의 우주적 광활함과 아득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아내와 나의 경이롭고 절묘한 인연을 생각하게 된다.
손 내밀면 언제나 다가오는 아내의 살가운 손.
아주 작고 작지만 내밀하게 다독여온 아내의 따뜻한 사랑.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모든 일상이 뭉클해지는 감동이고 기적인 법이라고
감히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우리는 연인
   기나긴 하 세월을 기다리어 우리는 만났다
   천둥치는 운명처럼 우리는 만났다 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연인

   우리는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우리는 마주잡은 손끝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기나긴 겨울밤에도 춥지 않은
   우리는 타오르는 가슴 하나로 너무 충분한
   우리는 우리는......
                                 - 송창식의 노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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