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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태릉 - 강릉 숲길

by 장돌뱅이. 2021. 11. 6.


'태강릉 숲길'은 1년에 두 번 (5월 16일 ∼6월, 10월 ∼11월) 개방된다.
단풍도 볼 겸 언덕길을 넘나드는 왕복 3.6km의 길을 걸었다. 단풍이 절정으로 물든 숲은
초록 일색이었던 지난 5월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같은 장소에 온 것 같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퇴색한 잎들이 우수수 흩날렸다.
아직 남아있는 화사한 단풍들도 머지않아 빛이 바래고 떨어질 것이다.
변화는 가장 보편적인 자연의 질서다. 이 말을  이해하면서도 대부분의 시간에 잊고 산다.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언덕을 넘어 다다른 강릉엔 "강릉(명종대왕 454주기, 인순왕후 심씨 446주기) 기신제향(忌辰祭享)"이 열리고 있었다.
기신제향은 나라에서 지내는 '기일 제사'의 의미다. 축문을 읽는 소리가 맑은 공기를 타고 낭랑하게 전해왔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병약한 명종으로선 400년 넘는 제삿밥 먹는 일도 피곤할 것 같다.
이제 그만 낙엽과 함께 흙으로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잎이 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들 듯
저기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밤에는 무거운 지구가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한없는 추락을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주시는 어느 한 분이 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

 

 

 


'태강릉 숲길'을 걸은 뒷날, 연전에 우리 곁을 떠난 겨레붙이를 보러 추모공원을 다녀왔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생전의 모습을 보며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애절함을 기도로 대신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직 건네지 않은 정겨운 말 한마디도 떠올려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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