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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19 - 서귀포의 폭포

by 장돌뱅이. 2021. 11. 2.

흔히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말하는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그리고 정방폭포를 모아 보았다.
거기에 작은(소) 정방폭포를 더했다. 비가 올 때만 물줄기가 생긴다는 엉또폭포는 가보지 못했다.
폭포만큼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숲도 인상적이었다. 제주에는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천지연폭포>> 

 


서귀포 도심에서 칠십리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 1km 정도 오르면 천지연폭포가 나온다.
폭포 주변과 물이 흘러가는 계곡 좌우에는 육지와는 좀 다른 모양의 나무들로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1966년부터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천연 난대림이다.

 숲에는 담팔수, 가시딸기, 송엽란 같은 희귀 식물에 구실잣밤나무, 가시나무, 산유자나무, 동백나무  등이
자라고 있으며, 특히 폭포 오른쪽  계곡에는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된 담팔수가 자생하고 있다고 
책에는 나와있지만 '나무맹'인 나로서는 동백나무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담팔수는 제주도가 북방한계선이라 육지부에선 자라지 못하는 상록교목으로 여덟 개의 잎사귀 중 하나가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붉어 '꽃처럼도 보이고 사철 푸르면서 또 사철 단풍이 드는 나무처럼 보인다'고 한다.

풀과 나무의 이름을 잘 알고 구분할 수 있으면 집 주변 공원 산책도 풍성해지겠지만  나에겐 외국어를
완전히 익히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높이가 22m 너비 12m의 천지연폭포는돌과 물과 숲이 짜임새 있게 어우러져 담백한 동양화 같은 품격이 느껴진다.
제주도의 다른 폭포와 달리 웬만해서는 물줄기가 줄지 않는다고 한다.

1601년 8월부터 선조의 왕명으로 6개월간 제주도에 파견된 청음 김상헌은 천지연폭포를
'기장유괴(奇壯幽怪 : 기이하고 장하고 그윽하고 괴이하다)'고 했다. 
김상헌 역시 폭포 주변 기이한 나무들의 숲과 장하고 씩씩한 폭포수, 그윽한 자태의 연못 등을 합쳐서 말한 것은 아닐까?

천지연폭포는 올레길 7코스가 지나는 칠십리시공원에서도 건너다볼 수 있다.
조금 먼 거리지만 주변 숲에 둘러싸인 폭포의 모습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천제연폭포>>

천제연 제1폭포

 

천제연 제2폭포

 

천제연 제3폭포


한라산에서 시작한 중문천과 색달천이 합쳐져 흐르다가 중문 관광단지 근처에서 3단의 천제연 폭포를 만든다.
높이는 제1폭포가 22미터로 제일 높고 제2, 제3폭포는 각각 17미터, 5미터로 낮아진다.
제1폭포 위쪽으로 콘크리트 구조물(도로)이 걸쳐 있어 눈에 조금 거슬린다.
하지만 천제연에는 여전히 계단을 오르내리며 발품을 팔아야 할 이유가 많다.  


천제연폭포를 품고 있는 계곡도 앞선 천지연에서처럼 기이한 나무들로 울창하다.
담팔수, 송엽란,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 빗죽이나무, 감탕나무, 푸조나무, 팽나무에 바람등칡,
마삭줄, 남오미자, 왕모람이 등의 덩굴이 섞여 있고, 자금우, 돈나무, 백량금과 석위, 세뿔석위, 일엽, 바위손 등 100여 종의
식물이 우거져 있다. 다만  나로서는 식별은커녕 이름조차 처음 듣는 것들이어서 그저 숲이라는 통칭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물론 그래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단 한 가지 문제는 시원스러운 호흡을 가로막는 답답한 마스크였다.
도대체 언제나 벗을 수 있으려는지, 벗을 수나 있으려는지······


제3폭포를 보고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에 "제주 4·3 중문면희생자위령비"가 있었다.
4·3 항쟁의 아픈 흔적은 제주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일부러 찾지 않아도 도처에서 만나거나 듣게  된다.
특정 지역에 한정된 비극이 아니라 제주 전역에 걸친 비극이기 때문이다.

위령비 설명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제주도 4·3 사건은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마자 한반도의 남과 북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고,
미군이 남한을 통치하던  시기에 벌어졌다. 이 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 때 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6명이
희생되면서 시작됐다. 도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과 극우단체인 서북청년회의 탄압이 이어졌고 급기야
3명이 고문치사당했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경찰지서를 습격하며
봉기했는데, 그 후 1954년 한라산이 개방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사건이 전개됐다. 이 기간에 인구의 10분의 1인
약 3만 명이 희생되었다. 중문면 12개 마을도 모두 큰 희생을 치렀다. (···) 유족들은 연좌제로  장래가 막히고 
온갖 치욕을 당하면서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50여 년 간 몸부림쳤다. 그 결과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 10월 15일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고서가 채택되자마자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

7년 7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3만여 명이 희생되는 와중에 제주도민이 감내해야 했던 살벌한 폭력의
강도와 그로 인한 고통을 잠시 다녀가는 사람이 쉽게 가늠할 순 없겠다.
다만 그 큰 비극 위에  제주도가 있음은 늘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정방폭포>>

 


정방폭포는 물줄기가 곧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라고 한다.

천지연이나 천제연에 비해 물줄기가 굵고 힘차다. 높이가 무려 23미터에 달하여 소리도 우렁차다.
가까이 다가서면 날리는 물안개로 무지개가 보이기도 한다.
정방폭포의 시원스러운 아름다움은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 하여 영주십경(瀛州十景) 중의 하나로 꼽혔다. 
영주는 '신선이 살던 땅'이라는 뜻으로 제주의 옛 이름이다.

아래 그림은 20세기 초에 정재민이 그린 「정방폭포」다.
거칠 것 없이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장쾌한 물줄기는 김수영의 시 「폭포」를 떠올리게 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그러나 정방폭포는 국가와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현장이기도 하다.
4·3항쟁 이후 군·경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하면서 잡아온 무장대원과 민간인을
이곳 나무에 묶어두고 사격 연습과 장검 돌격 훈련을 실시했다.
또 포로들을 밧줄로 묶어 폭포 절벽 끝에 세우고 맨 앞사람을 쏘아 떨어뜨리기도 했다. 
뒤에 있던 사람은 앞사람에 끌려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총알을 아끼는 방편이었다고 한다.

"자연은 황홀하나 비애는 깊다." 시인 허영선의 정확한 표현이다.
그 '비애'에 대하여 모두가 이제라도 시 속의 폭포처럼 '곧은 소리'를 내야 할 때다.
 




<<소정방폭포>>


정방폭포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작은 폭포가 나온다. 소정방폭포다.
높이는 낮지만 물줄기가 여러 갈래(열 개?)라 화려한 느낌을 준다.
다만 '소정방'이라면 삼국시대 우리 땅을 쳐들어온 당나라 장수 이름 같으니 그냥 '작은 정방폭포'라 하던가
아니면 아예 다른 아름을 붙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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