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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18 - 붉은오름과 절물오름

by 장돌뱅이. 2021. 10. 24.

1702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은 제주도 및 그 주변 도서의
자연·역사·산물·풍속·방어 등에 대해 기록한 『남환박물』을 남겼다.
그 책에는 제주도의 오름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한다.

한라산은  한가운데가 우뚝 솟아 있고 여러 오름들이 별처럼 여기저기 벌리어 있으니,
온 섬을 들어 이름 붙인다면 연잎 위의 이슬 구슬의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제주 오름에 관심이 있거나 한 번이라도 오름을 걸어본 사람은 그 표현이 피부에 와닿으리라.
제주도는 한라산과 오름, 그리고 바다로 삶을 규정한다. 거기에 바람과 구름과 햇볕이  더해진다.
길은 산과 숲과 초원과 바다를 지나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붉은오름과 절물오름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좋아 뚜벅이 여행자도 편리하게 갈 수 있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은 제주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도로 중 하나인 1118번 도로(남조로) 옆에 있다.
남원 쪽에서 제주시로 가는 버스를 타면 붉은오름 휴양림 입구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직전 정거장의 이름이 붉은오름 이어서 헷갈리기 쉽다.
붉은오름 정류장은 사려니숲으로 갈 때 내린다.

붉은오름은 오름에 덮인 흙이 유난히 붉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들머리는 멋진 소나무들로 빽빽하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쭉쭉 치솟은 나무들의 기세가 자못 도도하다. 
머체왓숲이나 사려니숲에서 경험한 풍경이지만 숲은 물리지 않고 늘 새롭다. 
새벽녘에 내린 비 덕분인지 숲에선 싱싱한 기운과 냄새가 더욱 강하게 풍겨 나왔다.

 

 

휴양림 주변에는 붉은오름과, 물찻오름, 가문이오름과 사려니숲길이 자리 잡고 있다.
물찻오름까지 걸을까 하다가 상잣성 숲길과 붉은오름만을  걷기로 했다.
여행에서도 욕심을 줄이는 게 어렵다. 많이 본다고 세상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대상과 공감하며 머무는데 있다. 

오름 쪽으론 계단이 좀 있었지만 5km 정도의 길은 전체적으로 초보자에게도 무난한 난이도였다.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니 구름에 가려 희미한 실루엣의 오름들과 푸른 목장의 초원이 내려다 보였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뭔가 영감을 주는 제주의 풍경이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상잣성 숲길은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길 후반부에 돌담으로 경계를 이루는 목장이 보였다.
한국마사회에서 조성한 경주마 육성 목장이라고 한다.
몇 곳인가 전망대 같은 데크가 설치 되어 있어 목장을 건너다볼 수 있었다. 날씨 탓인지 말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절물자연휴양림>>

 

절물자연휴양림은 1997년 개장하여 역사가 제법 오래되었다.
휴양림의 주 수종을 이루는 삼나무는 1960년 대 중반부터 인공적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휴양림에 들어서니 습한 안개가 나무 사이로 가득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원래 습도가 높은 곳인지 나무마다 밑동에 초록색 이끼를 입고 있었다.  

 

 

 

교목 숲이 끝나 본격적인 오름 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키 위에서 마른 콩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꾸물거리던 날씨가 기어코 비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비에 부딪히는 빗소리도 좋았다.

 

 

 

 

절물오름은 길이 나쁘지 않아 우중임에도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었다.
정상에는 우윳빛 비안개로 가득했다. 안개는 바람에 따라 나부끼며 굼부리와 주변 오름들을 넘나들었다.
'귀인소풍우(貴人召風雨)'의 귀인은  아니지만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던 순간엔 우리가 '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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