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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22 - 숙소와 이웃'괸당'

by 장돌뱅이. 2021. 11. 12.

우리가 묵었던 큰엉코지 숙소는 거실과 침실이 분리된 1.5룸이었다.
수납공간이 넓은 붙박이장과 깔끔한 부엌살림을 갖추어 아내와 둘이서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숙소 옥상에선 한라산이 멀리 건너다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옥상에 자주 올랐지만 한라산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은 드물었다.

제주에 머문 한 달 동안 맑은 날이 대부분이었음에도 한라산 윗부분에는 자주 두터운 구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름이 없으면 완만한 경사의 넉넉함으로, 구름에 가리어지면 드러나지 않은 신비로움으로,
한라산은 영산(靈山)으로서의 고고한 위엄을 잃지 않았다.

 

 

 


숙소 뒤쪽에는 작은 귤밭이 딸려 있었다.
큰길이 지나는 숙소 전면에서 불과 십여 미터 안쪽일 뿐인데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장소였다.

주인은 아침에 커피 한 잔과 함께 귤밭에 놓인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추천했다.
아쉽게도 유난히 '모기 친화적'(?) 체질인 나로서는 가끔씩 산책을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다.


9월 중순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귤은 초록색이었다. 귤농사에 경험이 없는 나는 겨울이 와야 노랗게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아니에요. 잘하면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맛을 보실 수도 있을 거예요." 
조생감귤이이서 10월 중하순이면 노랗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보다 수확시기가 더 빠른 극조생도 있다고 한다.

풋귤도 쓸모가 있었다. 주인은 귤을 따다가 귤청을 만들어 보라고 친절을 베풀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내 손으로 귤을 직접 따 볼 수 있었다.



 


그 이후 숙소를 들고날 때 가끔씩 귤밭으로 가서 귤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주인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귤엔 노란빛이 점점 번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숙소 주인이 주변 친척 집의 귤이 극조생이라 다 익었다면서 귤을 따러 가자고 했다.
숙소의 귤은 처음보다는 달라졌지만 아직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내기들이야 돈을 주고 귤따기 체험을 하는 판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와 나는 가위를 들고 주인을 따라나섰다. 귤 꼭지가 밋밋하도록 줄기를 자르는 것이 요령이었다.
잠깐 사이에 두 박스의 귤을 땄다. 탐스럽게 익은 귤이었다.

 

 


제주도에는 '괸당(궨당)'이라는 말이 있다.
한문으로는 권당(眷黨)으로 옛 문헌에만 전해오는 말인데 쉽게 말하면  일가친척이란 뜻이다.
다만 제주도의 '괸당'은 멀고 가까운 친척들을 두루 일컫고 결속력도 강하다고 한다.
아버지 쪽 '성펜괸당', 어머니 쪽 '웨펜괸당', 남자의 처가 쪽 '처괸당', 여자의 시가 쪽 '시괸당' 등등
살면서 범위가 커져가기 마련이므로  '제주도에서는 누구나 괸당'이라는 말도 있다.

예로부터 돌과 바람이 많은 척박한 환경, 중앙 정부로부터의 핍박, 잦은 외세의 침략에 부대끼면서
제주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괸당'이라는 제주만의 독특한 혈연공동체를 형성해 온 것이다.


괸당의 강고한 연대성은 모둠벌초에서 잘 드러난다. (···) 육지에서도 벌초를 행하나 제주도에 비할 바가 못된다.
제주 출신 남성은 명절이나 제사 불참은 몰라도 모둠벌초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 초중고교에서 벌초 방학을
할 정도로 모둠벌초를 강조한다. (···) 벌초하는 가족의 수 자체가 가족이나 문중의 세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불참하면 비난을 받는다. 부득불 불참하면 현금이라도 보냄이 예의이다. (···) 제주도에 살다 보면
괸당의 가공할 영향력을 피부로 감지한다. 둘 사이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친밀한 관계는
십중팔구 괸당이다. 괸당을 모르고서 제주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오랜 결론이다. 괸당이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때가 있으니 각종 선거철이다. 그래서 '이 당 저 당 괸당이 최고'라는 말도 나왔다.

- 주강현, 『제주기행』중에서-


주강현은 '괸당'의 공동체적 유대감은 긍정적인 덕목이나 세상이 넓어지고 지구촌 다문화 시대에 새로운 의미의
'괸당' 의식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적어도 순혈주의식 배타적인 성격은 제주 미래를 겨누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괸당'이 잘못 전해졌는지 제주도에 이주민은 정착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제주도의 인구는 지난 약 68만 명으로 오히려 지난 10년 간 10만 명이 늘었다고 한다.
인구 밀도는 360명 /㎢으로 서울과 광역시, 그리고 경기도 다음이다.
제주인들이 개방적인 자세로 새로운 '괸당'의 외연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반증 아닐까? 

한달살기와 생활은 다르겠지만 주인과 이웃,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방인인 우리를 살갑게  대해 주었다.
특히 숙소 주인은 제주시를 오가는 바쁜 생활 틈틈이 호박잎이나 소라, 손수 채취한 제주 고사리 등의
식재료를 자상하게 챙겨 주시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지 물어 주었다. 

숙소 주인과의 커피 타임

 

주인이 챙겨준 호박잎.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삼겹살과 함께 쌈으로 먹었다.


함께 제주살이를 하는 낯 모르는 이웃들도 정겨웠다. 장차 제주 정착을 계획하는, 딸보다 어린 나이의 부부도
있었지만 모든 여행지의 만남이 그렇듯 나이가 소통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웃들은 김치와 음료를 손편지와 함께 방문에 걸어두기도 했고 큰엉 바위에서 낚은 벵에돔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이 당 저 당 괸당이 최고'가 아니라, 아내와 나에겐 '이 괸당 저 괸당, 이웃괸당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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