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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23 - 올레길 4코스

by 장돌뱅이. 2021. 11. 14.

여행 전 올레길 걷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계획하면서  몇 코스를 걸어야겠다던가,
걷기 시작한 코스는 반드시 끝까지 걷겠다던가 하는 식의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숙소에서 가깝거나 버스로 접근이 쉬우면서도 아내의 체력을 감안하여 난이도가 높지 않은 곳을 짬짬이 걸어보고자 했을 뿐이다.
코스도 순서대로 걷지 않고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 편리함을 우선하여 선택하였다.  
(여행기는 편의상 코스 순서대로 정리했다.)

올레길을 시계방향으로 걸으면 파란색 띠나 화살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 주황색 표시를 따라간다.


재미삼아 코스마다 확인 도장을 찍는 올레패스포트를 샀다.
패스포트의 이름을 적는 난에는 "장돌뱅이와 곱단이"로 적었다.
제주도에 자주 와서 425킬로미터, 26개의 올레길 전 코스를 완주할 수 있으면 물론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올레 4코스는 표선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올레길을 걷기 전에 장이 열리는 날(2,7일)이라 표선민속오일시장부터 들렀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생활의 공간으로 보였다.
가정용 칼과 호미 등의 농기구류, 각종 채소 모종, 식재료 등을 팔고 있었다.
고구마를 사서 숙소에서 쪄먹을까 바라보다가 올레길을 걸어야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차 없는 뚜벅이 여행은 이럴 때 아쉽다.


 

표선면에 있는 식당 고수목마에서 말고기를 먹었다.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제주도에 말고기 식당이 50여 곳이나 되며 식육으로 도축되는 말은 연간 2천 두에 달한다고 한다.


식당 고수목마에서 나와 올레길 안내소까지 걷는 도중 넓은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모래사장이 매우 넓어서 바다는 그 끄트머리에 자그마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선 본 적이 없는 광활한 해변이었다. 

주변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썰물 때라 그런 것이고 물이 들어오면 전체가 바다가 된다고 한다.
 


올레 4코스는 해안길부터 시작하여 중산간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바다로 내려온다.
가없는 바다와 검은 돌의 해변은  제주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풍경임에도 아내와 나는 자주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뭐랄까. 번잡한 유명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제주의 은밀한 내면과 만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길이 일주동로를 건너 중산간으로 향하면서 바다 대신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바로 귤밭과 당근 밭을 포근하게 감싼 밭담이다. 돌과 흙에 담긴 햇볕이 유난히 따사롭고 정겨워 보였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향수 같은 시원(始源)의 감정을 불러오기도 했다.


오래전에 제주 당국이 밭담을 없애겠다고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국은 도로변을 조잡스럽게 보인다는 미관상 문제와 밭담으로 해서 비좁은 농지가 더욱 비좁게 되고
경작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밭담이 거센 제주의

바람에서 작물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지혜이자 노력의 결과물임을 망각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돌담을 견고하게는 쌓되 구멍이 숭숭 뚫어 놓은 이유는 틈새가 있어냐 거친 바람에 돌담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제주가 소중한 것은 제주만의 독특한 삶과 그 문화적 표현이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페 "알맞은 시간"은 올레 4코스를 걷다가 쉬어갈 만한 조용한 카페다. 
탁자 몇 개와 높은 천장으로 여유롭고 수수한 분위기다.   

존재를 알리는 뚜렷한 표시나 간판도 없이 밭 가운데 위치한 귤 창고처럼 보여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도착하기만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고  장 자크 루소는 말했다.
서둘 것 없는 자박자박한 걸음으로 제주의 풍경을 만나고 바람과 햇볕, 그리고 냄새에 취하는 올레길은 황홀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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