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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25 - 올레길 6코스

by 장돌뱅이. 2021. 11. 21.

올레길 6코스는 쇠소깍에서 시작하여 해안길을 지나 서귀포 도심의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까지 11km이다.
올레 가이드 북에는 난이도 하(下)의 걷기에 편한 길로 나와 있다.

쇠소깍

 


쇠소깍은 민물인 효돈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투명한 초록빛 연못(沼)이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연못에 흩어져 유유자적 떠다닌다.
바다 쪽에 형성된 검은 모래의 해변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이다.


쇠소깍을 지나면 게우지코지와 생이돌을 지난다.
입구에 세워진 설명에 따르면 게우지코지는('게웃'이 전복 내장) 지형이 전복을 닮은 모양이어서 유래되었다.
생이돌은 게우지코지 안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로 철새(생이)들이 쉬어가는 바위라 하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찻길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들어가 보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험준한 바위 지형이다.
바람과 파도가 거셌다. 해안 절벽의 나무들이 바닥에 눕다시피 한쪽으로 쏠려 있는 이유겠다.

 


자리돔으로 유명하다는 보목포구는 섶섬을 코앞에 둔 아담한 포구다
해마다 5월이면 자리돔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버스에서 만난 한 제주 사람은 요즈음은 자리돔이 예전만큼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제주 앞바다가 아열대화 되어간다는 언론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보목포구 근처에는 횟집과 카페가 많았다.
우리는 "카페 오르바"에 들려 맥주와 빙수로 갈증을 달랬다.
이상 기온으로 9월 하순 날씨가 한 여름 같았던 날이었다.

 

 


올레길과 바로 붙어있지는 않지만 호텔 서귀피안에 있는 빵집 보래드 베이커스도 쉬었다 갈만한 곳이었다.
창밖으로 멀리 문섬이 건너다 보인다. 밝은 분위기의 실내에는 달콤한 빵 냄새로 가득하다.

 


거믄여해안은 말 그대로 기묘한 형상의 검은 바위가 넓게 퍼져 있는 곳이다.
아래 사진은 허니문 하우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높이 5m의 나즈막한 소정방 폭포는 백중(음력7월15일)에 물맞이 하는 명소이다.
'백중물은 약수(藥水)'라 하여 물을 맞으면 여러 가지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

 


정방폭포 가까이 있는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
남영호는 서귀포 - 부산을 오가는 정기여객선으로  1970년 12월 15일 새벽 2시경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 사건으로 323명이 사망했다. 구조된 인원은 겨우 15명뿐이었다.
(조난자의 정확한 규모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규정 초과 과적, 정원 초과, 불법 선박 개조, 항해 부주의, 감독 소홀, 선주와 권력의 유착, 정부의 늑장 대응 등 전형적인 인재였다.
감귤 등 정량의 4배가 넘는 화물을 결박도 하지 않은 채 실었고 승객 64명은 승선자 명부에도 없었다.
게다가 선장과 통신사는 무자격자였다고 한다.

사고 직후 남영호가 발신한 긴급구조신호는 국내에서는 포착되지 못했고 일본 측에서 수신하여
한국에 무전을 쳤지만 응답이 없었다. 한국 해경은 현장 출동은 오후 1시로 일본의 순시선 파견보다 4시간이나 늦었다.
구조 인원은 일본 측이 8명, 한국 해경은 3명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고작 18구의 시신을 인양 후 시신·선체 인양을 포기하고 12 월 28일 합동 위령제를
지내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300여 명은 시신 없이 장례를 치렀던 것이다.
50년이 넘도록 남영호 사건은 아직까지 희생자 보상이나 위령사업은커녕 정확한 탑승자조차 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남영호란 '소'를 아프게 잃고도 고쳐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외양간'은 이후 1993년 서해 페리호와
2014년 세월호라는 대형 해양 재난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


정방폭포는 두 말이 필요 없이 제주도를 대표하는 폭포 중의 하나이다.
( *이전 글 참조 :  제주살이 19 - 서귀포의 폭포 )


그동안 그대에게 쏟은 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제는 그 절정에서
눈과 귀로만 몰아옵니다
그것도 바닷가에 이르러 
송두리째 몸을 날리면서
그러나 하늘의 옷과 하늘의 소리만을 
오직 아름다움 하나로 남기면서
그런 아슬아슬한 불가능이
어쩌면 될 것도 같은
이 막바지의 황홀을
그대에게 온통 바치고 싶습니다

- 박재삼, 「정방폭포 앞에서」-

 


서복전시관은 진시황의 방사(方士)였던 서불(서복)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다녀갔다는 전설을 주제로 꾸며놓은 곳이다.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과 정원, 전시관은 필요 이상으로 규모가 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감성적으로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코로나로 중국 여행객도 없어 더욱 휑해진 공간을 시진핑 주석의 사인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보고 느낄 것 많은 제주도에서 굳이?······ 글쎄?······인 곳.


서복전시관을 나오면 서귀포 시내다. 올레길 6코스는 서귀진성과 이중섭 거리를 지난다.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은 서귀포 제일의 상설시장이다. 갈 때마다 많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제주산 건조 생선과 과일, 그리고 오메기떡 등 다양한 먹거리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아내는 딸네집에 떡과 마른 생선을 택배로 부쳤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는 6코스의 도착지이자 7코스의 출발지이다.
올레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식당과 카페가 있다.
센터 맞은편에 있는 올레별책부록에서 올레패스포트와 책, 그리고  기념품 몇 가지를 구입했다.

 



"국토란 우리의 발로 밟으라고 펼쳐져 있는 것"이라는 소설가 박태순의 말은 올레길로 정당함이 확인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9월의 바람과 파도에 부서지는 눈부신 햇살은  국토와 우리의 걸음을 찬미하는 환호성이었다. 
아내와 나는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과 사연에 그저  감탄사를 남발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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