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코스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출발하여 칠십리시공원을 지난다.
시공원은 '市'공원이 아니라 '詩'공원이라고 한다.
공원 안에 서귀포를 주제로 한 시비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시비(詩碑)를 지나면 천지연 폭포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가까이서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의 천지연폭포를 볼 수 있다.
삼매봉의 정상에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Canopus)을 바라볼 수 있는 팔각정 남성대가 있다.
남극노인성은 그냥 노인성 또는 수성(壽星)이라고도 부르며 나라의 국운과 사람의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별로 알려져 있다. 이 별이 밝게 보이면 국운이 융성하고 전쟁이 사라지며, 이 별을 세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국가제사로 노인성제를 매년 춘분·추분에 두 번 지냈다.
토정 이지함을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이 이 별을 보기 위해 제주를 찾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귀포와 남쪽 해안가에서만 동지 전후로 3개월씩 6개월 동안 볼 수 있지만, 아주 맑은 날에만 볼 수 있어 실제로는 일년에 40일 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랜 전통과 많은 이야기들을 품은 노인성은 어찌된 일인지 1960년대 이후 세간에서 잊혀졌다.
올레길을 연 서명숙 씨의 글에 따르면, 이 별의 존재를 다시 세상 사람들에게 일깨워준 사람은 전직 제주 문화재 관련 공무원이었던 윤봉택이라는 분이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고문서에서 노인성을 발견하고 연구에 몰입한 끝에 이를 문화 콘텐츠로 개발하겠다는 제안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인성을 노인의 성교육쯤으로 인식하는 조직의 무지에 포기를 해야 했다. 퇴직 후 그는 문화재청 사업 공모에「탐라에서 노인성을 보다」라는 제안서를 제출하여 채택되었다. 이때부터 노인성이 문화 코드이자 천문학 코드로 다시 인식된 것이다.
세상에는 올레길의 서명숙 씨나 노인성의 윤봉택 씨처럼 무관심하게 지나치기 쉬운 어떤 일에 매달려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직 노인성을 보지 못했다. 설혹 노인성을 한 번 본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별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밤하늘을 바라볼 때, 아니면 별에 얽힌 글을 읽거나
주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시간은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지 않을까?
삼매봉을 내려와 외돌개에 들어서기 전 제주올레 '족은(작은)' 안내소인 카페 "솔빛바다"가 있다.
다리쉼을 할 겸 카페에 들어 음료를 마셨다. 주인이 귤을 몇 개 먹어보라고 주었다.
9월인데 서귀포엔 벌써 귤이 도처에 흔하다. 귤만큼 인심도 후하다.
솔빛바다 아래쪽에 신선바위가 있고 더 아래에 황우지선녀탕이 있다.
추석이 지난가을임에도 이상고온으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돌개는 높이 20m 둘레 10m의 돌기둥이다.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할 때 바다를 뚫고 분출된
용암 줄기가 그대로 굳은 후 파도에 깎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원나라 잔여 세력을
물리칠 때 이 바위를 장군 모습으로 꾸며 활용했다고 하여 장군바위라고도 부른다.
또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길은 돔베낭길을 지나 잠시 바다를 버리고 서귀포여고 쪽으로 우회를 한다.
이후 속골에서 다시 바다와 만나 수봉로 - 일냉이 - 공물 - 망다리 등을 지나 법환포구에 닿는다.
오늘날의 해녀라는 말을 옛날에는 잠녀(潛女) 혹은 잠수(潛嫂)라고 했다.
17세기 전반까지 해산물을 관아에 바치는 일에 남자(鮑作)도 함께 했지만, 과도한 착취를 못 견딘 남자들이 육지로 도망치면서 그 의무를 점차 여성이 감당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 목사 기건(奇虔)은 엄동설한에 벌거벗은 잠녀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염치지심(廉恥之心)'이 용납하지 않아 그 뒤로는 전복이나 소라 따위를 일절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관리는 드물고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은 진상과 수탈을 위해 잠녀들의 고통을 강요하였다.
여성들은 물질만 아니라 집에서도 육아 이외에 물 떠 오거나 곡식과 땔감을 장만하는 등의 힘든 일을 떠맡았아야 했다. 강인한 생활력으로 칭송받는 전통 제주 여성들의 삶의 이면에는 이처럼 가혹한 노동의 그림자가 따라 다녔던 것이다.
우리는 제주도의 가이업는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아랴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의 물결에 시달리는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밤이 되면 돌아와
우는 아이 젖 먹이며 저녁밥 진다
하루 종일 해봤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
살자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1932년 1월 일제에 맞서 저항 운동을 벌였던 당시에 구좌면 일대의 잠녀들이 불렀던 "해녀의 노래"다.
법화 포구를 지나 있는 식당 "다미"의 전복 물회와 전복 비빔밥.
이번 제주살기에서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음식 중의 하나였다.
강정마을에 대해서는 앞선 글로 대신한다.
(*이전 글 : 강정마을을 지나며 )
올레 7코스는 월평 아왜낭목쉼터에서 끝난다. 바로 그 자리에서 8코스의 길이 시작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걷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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