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8코스 다음에 9코스는 건너뛰고 10코스를 걸었다.
9코스는 길이는 6km로 짧으나 난이도가 상이어서 허리가 아픈 아내에게는 무리일 것 같았다.
10코스는 두 번에 나누어 걸었다. 처음에는 시계방향으로 두 번 째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화살표를 기준으로 말하면 먼저 파란색을 따라, 나중에는 주황색을 따라 걸은 것이다.
호두를 반으로 갈라 엎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범종이나 중절모 같기도 한 산방산은 높이 395미터로 다부져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빨래를 하던 설문대할망이 방망이로 한라산을 치는 실수를 저질러 한라산 봉우리가
떨어져 나온 것이 산방산이다. 또 다른 전설은 사슴사냥을 하던 사냥꾼이 실수로 화살을 옥황상제
엉덩이에 쏘아, 화가 난 옥황상제가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져서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산방산과 한라산 분화구의 크기가 비슷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산방산 아래에 쪽 언덕에 하멜기념비가 있다.
하멜은 1653년네델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바타비아(자카르타)를 출발하여
일본 나가사끼(長崎)로 가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던 중, 제주도 산방산 근처 해안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후 13년 28일 동안 억류 생활 끝에 탈출하여 귀국을 하였다.
탈출 후 하멜은 난파와 표류 외에 조선의 지리·풍토·정치·군사·풍속·종교 등 억류 생활
동안의 경험을 상세하게 기록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 작성은 13년 억류 기간 동안의 임금을 회사로부터 받아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멜보고서』는 1668년에 책으로 출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조선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렸다.
책의 원래 제목은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였다고 한다.
하멜기념비에서 바다 쪽을 내려다보면 용머리 해안에 배 한 척이 보인다.
하멜이 타고 온 배를 재현하고 내부를 전시관으로 꾸며 놓은 하멜상선전시관이다. 2003년에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룩한 히딩크의 인기도 거들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올레길을 걷는 중이라면 들러 하멜이 다녀가던 시대를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제주도에만 해당되는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도 많은 '하멜'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2020년 1월 기준 등록된 외국인은 38,168명이다. 이는 제주 전체 인구의 5.5%에 해당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 외국인까지 고려하면 더 커질 것이다.
외국인들은 저임금으로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종사하며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주춤하면서 제주도에서는 감귤 농사와 어업 분야에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찬반의 논쟁이 있지만 다문화와의 공존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필연적인 미래의 모습일 수밖에 없겠다.
내 짝꿍은 나와
피부 색깔이 다르다
나는 그 애 커다란 눈이 좋다
내 짝꿍 엄마는 우리 엄마와
말소리가 다르다
나는 그 애 엄마 서투른 우리 말이 좋다
내 외가는 서울이지만
내 짝꿍 외가는 먼 베트남이다
마당에서 남십자성이 보인다는
나는 그 애 외가가 부럽다
고기를 잘 잡는다는 그 애 외삼촌이 부럽고
놓아기른다는 물소가 보고 싶다
그 애 이모는 우리 이모와
입는 옷이 다르다
나는 그 애 이모의 하얀 아오자이가 좋다
- 신경림, 「달라서 좋은 내 짝꿍」-
하멜기념비보다 위쪽에 산방연대(山房煙台, 山房烟台)가 있다.
산방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는 통신수단이다.
봉수대와 기능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하멜기념비 아래쪽 해안은 용이 머리를 틀고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이어서 용머리해안이라고 부른다.
오래 세월 퇴적된 사암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해안절벽이 절경이라는데 하필 우리가 간 날 파도가 높아 출입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바다와 산방산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아서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풍경을 감상하는데도 한계 효용의 법칙은 풍경 감상에도 유효한 것 같다.
멀리 형제섬이 보이는 사계 앞바다에서는 해녀들의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숨비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 같았다.
사계 포구에 있는 카페 뷰스트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 것으로 이 날의 걷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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