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0코스의 두 번째 걷기는 모슬포에서 시작하여 송악산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산방산을 정면에 두고 걷고자 했기 때문이다.
걷기 전 하모리의 영해식당에서 처음으로 몸국을 먹었다. 못내 궁금했던 음식이었다.
원래 몸국이 외지인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는 맛은 아니라는데, 이곳의 몸국은 구수하니 먹을만했다. 원래 몸국의 맛이 그런지 아니면 여행자들에 맞추어 조정된 맛인지 판단할 근거가 내겐 없다. 아무튼 괜찮은 맛이었다.
몸국은 공식(公食) 그 자체이다. 큰일에 돼지를 잡아 추렴할 때 다 함께 먹는 몸국은 돼지모자반탕이다. 단순한 국이 아니라 오래 끓인 진한 탕국이다. 돼지를 잡아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다가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만든다. 잔칫집에서 가문잔치 전날, 상례 집에서는 일포 전날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돼지를 잡고 다음 날 돼지를 삶았던 가마솥에서 만든다. 몸은 제주 연안에서 봄에 채취하여 말려두었다가 사용한다. 돗 국물은 진한 맛이 우러나야 제격이다. 육지와 달리 제주의 일상 음식에는 진한 탕류나 찌개가 없으나 큰일에는 몸국이 필수이다.
-주강현, 『제주기행』 중에서 -
모슬포에서 5km을 가면 제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고 비옥한 알뜨르가 펼쳐져 있다.
'알'은 아래를, '뜨르(혹은 드르)'는 들을 뜻한다. 그러니까 알뜨르는 '(마을) 아랫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밭 여기저기에 봉긋봉긋한 언덕 같은 곳이 여럿 보인다.
창고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전투기를 숨겨두려고 1943년에 만든 격납고다. 현재 19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일제는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곳곳에 군사 도로와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해안선 전역 80여 곳에 약 700개의 인공 동굴을 파서 무기를 비축하였고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비행장과 모슬포의 알뜨르비행장을 만들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 수세에 몰린 일제는 제주도를 일본 사수를 위한 결전지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1945년 2월까지만 해도 1천 명이었던 주둔 일본군을 8월에는 7만 4천 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다행히 연합군은 제주도가 아닌 오끼나와로 상륙하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제주도에서도 오끼나와처럼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었다.
송악산이 산이수동과 만나는 근처 절벽에 15개의 인공 동굴이 있다. 일제가 이곳에 어뢰정을 숨겨놓았다가 연합군 함정이 다가오면 폭탄과 함께 돌진해서 자폭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오래전에 펴낸 나의 책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에서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 하여 나라가 망해도 산하는 그대로 있다고 하지만, 패망한 나라의 산하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처럼 제 모습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우리가 '국토'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땅덩어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부대끼며 살아온 동반자로서의 삶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온전할 때 국토의 모습 또한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이 고통받고 좌절할 때 국토 또한 우리와 같은 시련과 아픔을 견딜 수밖에 없다. "
제주도의 자연 역시 가혹했던 일제강점기를 사람들과 함께 깊은 고통받으며 지나야 했던 것이다.
송악산 가까이 있는 야트막한 섯알오름은 한국전쟁 직후 대정·한림 일대의 무고한 도민이 국가에 의해 학살된 현장이다. 1950년 8월 20일 제주지구 계엄 사령부는 보도연맹원, 4·3항쟁 때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람 등 주민 포함 193명을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새벽 2시에 처형된 이들의 시신은 유족에 의해 수습되었으나 , 새벽 5시에 처형된 132명의 시신은 당국이 은폐를 하기 위해 인도를 거부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약 7년 만인 195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수습될 수 있었지만 시신의 뼈들이 뒤섞여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유족들은 뼈를 한데 모아 132개의 무덤을 만들어 봉안을 하고 희생자를 한 조상으로 함께 모시자고 의견을 모았다. 섯알오름 근처 사계리에 '백할아버지한무덤(百祖一孫之墓)'이 만들어진 가슴 아픈 사연이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5·16 군사쿠데타 당시 23위가 강제 이장당하고 현재 109위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어도하라 이어도하라
이어 이어 이어도하라
이어 하멘 나 눈물 난다
이어 말은 말낭근 가라
(이어도여 이어도여
이어 이어 이어도여
이어 소리만 들어도 나 눈물난다
이어 소리는 말고서 가라)
-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 중에서 -
제주 곳곳에 남겨진 이런 사연을 알게 될 때마다 '살암시민(살다보면) 살아진다', '사난 살앗주(사니까 살았다)', '살암시난(살다보니까) 살아진다' 같은 제주 말이 특별하게 들려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삶의 '이어도'를 꿈꾸어야 한다는, 애잔하면서도 준엄하고 강인한 삶의 정언명령 같이······
송악산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와 같은 지형이다.
둘레길을 걸으면 어디서나 바다와 수평선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송악산의 또 다른 이름이 '물결(절)이 운다'는 뜻의 '절울이'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중간에 계단이 있긴 하지만 험하지 않은 길이어서 마음은 탁 트이고 몸은 고되지 않다.
펼쳐진 멋진 풍경에 고될 틈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의 재주로는 글이나 휴대폰 사진으로 송악산 둘레길의 황홀함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걸어야만 받을 수 있는 축복이고 환호성이고 찬가이다. 송악산을 돌아 산이수동으로 내려오며 나는 아내와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와 아름다운 날씨를 허락해 준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 더 많은 길을 함께 걷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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