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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살이 21 - 서귀포의 섬들

by 장돌뱅이. 2021. 11. 9.

서귀포항. 거대한 흰 구름이 한라산을 가리고 있다.


한라산 주위에 오름이 있다면 제주도 해안엔 크고 작은 유·무인도가 있어 풍경에 활력과 짜임새를 더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중산간이나 해안이 조금은 무덤덤해지고 지루해졌을 것이다.
유아독존의 장엄함이나 일필휘지의 장쾌함을 보이는 풍경만큼이나 아기자기하게 자상한 풍경도 마음을 끄는 법이다. 

서귀포항을 중심으로 4개의 섬이 부채처럼 퍼져 있다. 동쪽으로부터 섶섬, 문섬, 새섬 그리고 범섬이다.
올레길 6코스와 7코스를 걷다 보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어느 섬이나 육지에선 보기 힘든 진귀한 난대림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섶섬>>


섶섬은 섭섬, 삼도(森島)라고도 부른다. 또는 섬 전체가 숲이 우거져 숲섬이라고도 한다.

올레길 6코스가 지나는 구두미 포구 앞바다에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떠있다.

 


섶섬은 원래는 사람들의 출입이 허용되던 곳이나 2000년 큰 불이 나 소방관이 순직하고
천연기념물인
파초일엽(넙고사리) 자생지가 크게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
방문객의 부주의로 일어난 이 사고 이후 지금은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고 한다.


풍경은 사람들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사연이 깃들며 깊이를 더하고 의미를 담기도 한다.

1951년 1월 화가 이중섭은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서귀포로 와서 10여 개월을 살았다.
원산에서 부산으로, 다시 부산에서 서귀포로 이어지는 고단한 피난 생활이었다.

딱한 삶을 산 이중섭이었지만 서귀포 시절만큼은, 궁핍했을지언정 마음은 행복하고 안정되었기에
그 시절 그의 그림 「섶섬이 보이는 풍경」「서귀포의 환상, 낙원」등은 대상이 긍정적으로 포착되어
아주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

이중섭, 「서귀포의 환상, 낙원」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잘,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 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삶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질처럼 입을 다물던 방

-나희덕, 「섶섬이 보이는 방」 중에서-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가슴에는 천도 복숭아 / 엉덩이에는 사과가 익어 가는 / 내 아이는 / 지금 향내로 가득합니다 /
곧 연둣빛 싹도 살며시 돋고 / 계집아이 수줍음도 돋아나겠지만 / 내 아이는 / 더 자라지 않고 /
벌거벗은 채로 뛰어노는 / 당신의 아이들 속에  /벌거벗은 채로 / 봄을 가지고 화평을 가지고 /
영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싶습니다 / 찢어진 은지 속에서도 / 아름다운 세상 만들며 /
순연한 부드러움 / 맑은 영혼 영혼으로―

-신달자, 「편지2 - 이중섭 화가께」- 

이중섭, 「서귀포 바닷가의 아이들」



<<새섬과 문섬>>

새연교

 

새연교
새섬 둘레길


서귀포항 바로 앞에 있는 새섬은 초가지붕을 덮는 '새(띠)'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초도(草島), 모도(茅島)라고 한다. 새섬으로 가기 위해서 썰물 때를 기다려 '새섬목'을 걸어야 했으나
2006년에 새연교로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은 언제든 쉽게 건너갈 수 있다. 
새섬에는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40분 정도면 섬을 한바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황우지선녀탕 근처에서 바라본 새연교와 새섬, 그리고 문섬


문섬은 모기가 많아 '모기섬(蚊島)'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나는 멀리서만 바라보아야 할 섬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이상하게 모기들은 나에게만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와 결혼 전 딸아이는 나를 '휴대용 모기약'이라고 놀렸다. 
제주도에 와서도 귤밭 가까이 가면 어디선가 모기들이 나타나 나에게만 맹렬하게 공격을 해왔다.
같이 있는 아내는 태연하게 낄낄거렸다. 연애 시절 아내의 별명이 모기였다.
그러고 보니 모기와 난 운명적 관계인 것 같다.
 

외돌개에서 바라본 문섬

 

호텔 서귀피안의 부속 카페 보래드베이커스(Boraed Bakers)에서 본 문섬



<<범섬>>

법환포구에서 본 범섬

 

강정마을에서 본 범섬


올레길 7코스가 지나는 강정포구 가까이에서 범섬(虎島)은 금속과 콘크리트 (군사) 해안 시설 건너로 보인다.
그 이전에 법환포구를 지나며 본 범섬과는 다른 풍경에 다른 느낌이다.

법환포구에서는 조용하도 평화롭던 풍경이 강정포구 근처에서는 뭔가 살풍경하고 부산스러워 보인다.
 
수만 년 그 자리를 지켜온 바위와 파도와 모래의 풍경을 도려낸 '폭력'의 명분은 늘 화려하다.
국익과 지역 개발, 수익 증대, 관광객 편의 등등.
하지만  '4대강'에서 보듯 진실은 변화된 풍경의 이면에 '상처'로 남아 있다.
자연에 관한 한 현상유지가 최고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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